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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루트립족, 지도 위에서 자신만의 마이크로마크를 잇다.

고수들의 여행 패턴이 바뀌고 있다.

꿀 같은 추석연휴가 끝난 어느 날 직장인 김길만(28) 씨에게 동료가 인사를 건넸다. “길만 씨. 영국 다녀왔다면서? 런던아이는 잘 있고?” 상사의 알은체에 그가 답한다. “관광지는 안 갔어요. 셜록홈즈 추리여행이었거든요.” 그는 이번 여행에서 런던의 명물 피쉬앤칩스 대신 BBC 드라마 <셜록홈즈>의 촬영지인 스피디카페 샌드위치를 먹었고 지도에도 잘 나와 있지 않은 코난도일이 첫 습작을 쓴 집을 찾아내기 위해 여왕의 궁전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영국의 굵직굵직한 랜드마크(landmark) 대신 그가 찾은 것은 현지인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릴법한 마이크로 마크(micro mark)들이었다.

 

자신만의 route로 여행하는 자, 퍼스널 루트립 족이 등장했다.?

특정 국가나 도시의 랜드마크를 찍으며 다니는 기존 ‘점’ 여행과는 달리 비록 널리 알려진 여행지는 아닐지나 자신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마이크로마크를 ‘선’으로 이어 메시지를 담는 여행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자신만의 루트(route)를 만들며 여행(trip)하는 이들을 가리켜 퍼스널 루트립족이라 한다.?

 

퍼스널 루트립 족의 3가지 특징

이들의 여행은 기존 여행과 크게 다음과 같이 3가지 관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1. “런던에 가고 싶어 런던에 간 게 아니라, 셜록홈즈가 좋아 런던에 갔어요.”

퍼스널 루트립의 카테고리는 ‘지역’이 아닌 ‘주제’로 분류된다.

대부분의 여행사 홈페이지 카테고리는 지역별로 나뉘어져 있다. 실제로 대학생들은 ‘이 때 아니면 언제 가보겠어’하는 마음으로 유럽일주에 나서고 직장인들은 ‘휴가가 짧으니 일단 가까운 데’를 외치며 동남아를 찾는다. 하지만 퍼스널 루트립족의 우선순위는 지역이 아닌 주제다. 한국을 찾는 여행객 열에 아홉은 경복궁과 인사동, 남대문시장에 들른다. 하지만 동양미가 결합된 현대건축물을 주제로 한 루트립족이라면 그는 건축가 승효상의 <수졸당>이나 김수근 선생의 <공간사옥> 같은 마이크로 마크를 잇는 여행을 계획할 것이다. 한편 퍼스널 루트립은 <실크로드>나 <순례자의 길>과 같은 클래식 루트립과는 구분된다. 중국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거치는 실크로드는 이미 만들어져 있지만, 퍼스널 루트립은 개개인이 ‘창조’한 길인 까닭이다.

2. “사실 하나하나보면 큰 의미는 없는 장소들이죠. 하지만 이게 이어져서 생기는 메시지. 정말 멋진 경험이에요.”

여러 개의 마이크로마크가 일관된 주제에 의해 연결되었을 때 띄게되는 메시지는 여행객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한다.

마이크로마크는 단독으론 랜드마크만큼의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여행자의 관심사가 녹아든 마이크로마크가 연결되어 하나의 루트립을 완성했을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만약 젊은 작가 지망생이 여행을 떠난다면 다음의 두가지 계획 중 어느 것이 더 묵직한 기억으로 남을까.

  • 플랜A

포르투갈에서 유명한 포르투 와인을 마신다. 영국에서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을 구경한다. 런던아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 플랜B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K.롤링에게 영감을 준 포르투갈의 렐루 서점 (Livraria Lello)의 이른 아침 첫 손님이 되어본다. 그녀가 무명시절 하루 종일 글을 썼다는 에딘버러의 엘리펀트 카페(The Elephant House) 창가에 앉아 그녀가 즐겼던 커피를 마신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대영박물관 도서관에 앉아 10년 후의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3. “다른 사람의 루트에서 이건 빼고 저건 넣어 저만의 루트를 만들 수 있어요. 제 루트가 누군가에게 참고가 되기도 하고요.”

그렇게 만들어진 루트는 끊임없이 변형될 수 있다. 창의적인 루트는 세상에 없던 콘텐츠의 생산으로 직결된다.

관광지에선 늘 붐비는 곳만 붐빈다. 많은 이들이 동일한 여행책자를 기준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재생산해내는 정보 역시 여행책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퍼스널 루트립족에겐 고유한 콘텐츠의 소스가 무궁무진하다. 스스로 선택한 주제이고, 평소 관심사이기에 어느정도의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 루트 역시 스스로 만든 것이니 일정표부터가 새로운 정보가 된다. 그들이 창조한 콘텐츠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이들의 루트립을 모방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퍼스널 루트립은 아주 오래전 <순례자의 길>이 그러했던 것처럼 클래식 루트립으로 전형화되기도 한다. 이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서비스로 여행 루트 플래닝 및 공유 사이트 voyajo를 들 수 있다. 누구나 타인이 만들어놓은 여행루트를 검색할 수도 있고, 본인이 직접 여행지들을 연결하여 루트를 완성할수도 있다. 물론, 타인의 루트를 활용하거나 SNS를 통해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1

여행 루트 플래닝 및 공유 사이트 http://www.voyajo.com/

2

런던 여행의 두가지 방법

 

퍼스널 루트립 족, 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급속한 기술의 발전과 라이프패턴의 변화가 이들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냈다. 퍼스널 루트립족의 탄생배경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보자.

1) “사람많은 관광지 아니면 위험하다고 손사래치던 시대는 지났죠. 예기치못한 일이 생겨도 스마트폰이 있잖아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곧잘 두려움을 수반해왔다. 여행사가 보증하고 가이드가 안내해주는 패키지 여행은 그 두려움에 수수료를 매겨 판매되어온 셈이다. 하지만 제집 드나들듯 공항을 넘나드는 시대다. 정보는 넘쳐난다. 내가 어느 좌표에 서 있는지를 알아내는 데에 필요한 것은 고작 두 번의 스마트폰 터치 뿐이다. 자연스럽게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도 예전만 못해진다.

2) 중국가서 만리장성보고 미국가서 그랜드캐년가는 여행은 할 만큼 해봤어요. 나만의 갈증을 풀어줄 뭔가가 필요해졌구요.”

여행을 즐겨하는 이들에게도 어느 순간 권태가 찾아온다. 에펠탑 앞에서 찍은 사진은 전국민의 졸업사진이나 된 듯 흔해졌다. 남과 다른 여행을 통해 자신을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여기에 더해지고 평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를 여행에 녹여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3)?“역사를 좋아하는터라 실크로드 여행하면서 각 지점이 연결되었을 때 생기는 메시지의 힘을 느꼈어요. 그 감동이 오래 가더라고요.”

전통적인 루트립 역시 퍼스널 루트립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도미노 블럭이 넘어지듯 상호 영향을 주며 만들어진 문명교류의 루트, 실크로드 여행자는 인류의 문명이 형성된 길을 직접 걸으며 느낀 강렬한 메시지를 잊기 어렵다. 전세계 순례자들이 남긴 노란 화살표에 의지해 수백km를 걷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 역시 자기성찰과 극기의 메시지를 각인시킨다. 이러한 전통적인 루트립의 매력을 느낀 이들은 본인의 퍼스널리티를 반영한 새로운 길을 꿈꾸게 되고, 이는 퍼스널 루트립으로 연결된다.

4)?“내 관심사를 충족시켜주는 장소들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잖아요. 아무리 작고 유명하지 않은 곳이라도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기술의 발전이다. 아무리 사소한 건물, 거리, 상점이라 하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널리 알려진 대중적 정보가 아닌 사소한, 이를테면 ‘인사동 입구 세번째 골목 두번째 찻집’과 같은 정보를 마이크로 데이터라 칭해보자.) 위치정보공유기술의 발전과 SNS의 활성화는 마이크로마크 데이터에 날개를 달았다. 이를테면 이런거다. 자타공인 맥주 매니아 최이슬 (23) 씨는 어학연수를 위해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다. 주말을 끼고 여행을 계획하는데 아무래도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에는 끌리지 않는다.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맥주공장 루트립. 전세계 맥주공장의 위치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 (http://www.brewerymap.com/)에 들어가 뉴질랜드를 검색한다. 그가 사는 웰링턴 인근 6군데의 맥주공장이 이번 그의 루트립 마이크로마크가 된다. 첫번째 목적지는 yeastieboys. 검색을 통해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YeastieBoys)에 접속한 그는 이번 주말 방문가능 여부를 관리자에게 묻는다. 그가 이름도 생소한 맥주공장 여행계획을 확정짓는데에는 불과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 뉴질랜드 맥주공장 루트립

3

전세계 맥주공장 검색 서비스 http://www.brewerymap.com/ (뉴질랜드 내 맥주공장 검색 예시)?

마찬가지로 현대건축을 주제로 퍼스널 루트립을 계획한다면 archdaily.com을 참고할 수 있다.

  • 전세계 현대건축 루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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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현대건축 검색 서비스?http://www.archdaily.com/map,?https://www.facebook.com/ArchDaily?

  • 영국 전통서점 루트립

영국의 전통적인 서점을 주제로 잡았다면. 가디언 지에서 소개한 포스트가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5

영국내 최고의 서점 및 문학관련 장소 검색 서비스 http://www.theguardian.com/books/interactive/2012/may/31/best-bookshops-map

이렇듯 정교한 위치정보와 SNS가 마이크로데이터와 결합하여 인간의 여행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5) “비행기나 숙박을 여행사에 의존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잖아요. 내 마음대로 루트 짜는 데 거리낄 게 없어진거죠.”

공편과 숙박, 현지 활동 예약을 위해 에이전시를 통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왔다. 원하는 시간을 입력하면 (심지어 가장 싼 가격까지) 알아서 결과값을 대령해주는 서비스가 부지기수다. 이 말은 더 이상 에이전시가 제시하는 보편적인 일정표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뜻. 수수료는 아끼고 자율성은 높일 수 있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

퍼스널 루트립족의 미래를 내다보다.

1. 주제별 루트립의 상품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특정 퍼스널 루트립이 대중성을 인정받을 경우, 하나의 여행상품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 기존 여행이 지역별 분류에 충실했다면, ‘주제별’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또다른 여행체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국/서유럽/동남아/남미로 여행의 형태를 나누는 것이 아닌 자존감 향상 루트립 / 캐릭터 디자인 루트립 / 행복의 비결 루트립과 같이 개인적 니즈와 관심사를 반영한 여행상품의 대중화 역시 기대해볼 수 있다.?

2. SNS를 통한 루트립 마이크로데이터 자동 수집 서비스

트위터에 이어 페이스북도 해시태그를 통해 특정 주제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만약 루트립의 주제별로 해시태그가 정해지고, 전세계 루트립족들이 SNS콘텐츠 생산시 이를 사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퍼스널 루트립을 계획 중인 이들이 관련 정보를 SNS에 업로드할 때마다 #routrip_selfesteem이란 해시태그를 단다고 가정해보자. 이들은 가고자 하는 (혹은 방문한) 마이크로마크의 위치정보나 소소한 정보, 마이크로데이터를 해시태그와 함께 업로드할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동일한 주제의 여행을 계획하는 이은 간단한 키워드 검색만으로 이들의 정보를 한 페이지에 모아 볼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routrip_으로 시작하는 해시태그가 달린 콘텐츠와 각 위치정보를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사이트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전세계 숙박과 항공 예약 서비스와 연계하여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도 있는 것은 물론이다?.

3. 분야별 전문가 큐레이션과의 결합

퍼스널 루트립족들은 다른 여행객에 비해 탐구의 욕구가 높다.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 하에 계획된 여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퍼스널 루트립의 토대가 될 마이크로데이터는 획득 자체는 용이하나 신뢰성은 높이 평가하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문가 큐레이션의 결합이 요구된다. 종전 여행사 가이드들이 지역별 랜드마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제공했다면 퍼스널 루트립 플랜에 있어서 전문가는 본인이 가진 정보를 큐레이션하여 퍼스널 루트립의 마이크로마크 선정과 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행복의 기준’을 주제로 여행을 가고자 하는 이가 있다. 국민행복지수 1위, 국민의 90%가 행복하다는 부탄을 중심으로 한 퍼스널 루트립을 계획하려 한다. 이 때 서남아시아 전문가와 인류학 전문가의 의견은 여행의 질을 한층 높여줄 것이다. 수많은 마이크로데이터 가운데 여행객의 상황에 부합하는 것들을 골라 일정별로 큐레이션할 수 있는 역량이 그들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퍼스널 루트립족의 출현은 여행 산업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져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소비자 개인의 열정과 만났을 때 가장 큰 존재가치를 가진다고 믿는다. 그것이 바로 퍼스널 루트립의 대중화 가능성을 점치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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