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s-serif

Aa

Serif

Aa

Font size

+ -

Line height

+ -
Light
Dark
Sepia

화분에서 키우는 애완식물, ‘Petlant’

애완동물 왜 키우시나요?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사회적으로나 시대적으로 애완동물을 키워야 하는 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애완동물들과 주인사이에서 오고 가는 교감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주요한 이유가 아닐까? 서로가 사용하는 언어와 표현의 방법은 다르지만 그리고 정확히 소통하고 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애완동물들의 표정이나 몸짓으로 주인은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주인또한 주인이 느끼는 감정을 애완동물에게 직접적 행동, 혹은 간접적인 표현으로 감정간의 소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교감의 속성이야 말로 많은수의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이제는, 애완동물을 키우며 정서적 교감을 통한 만족을 얻듯이

식물을 키우며 그러한 교감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식물을 애완동물처럼 키우는 사람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텃밭이나 마당 그리고 전원주택 등 넓고 큰 공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 책상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화분도 매일 아침 물을 줘가며 잠깐의 여유를 느낀다면 우리는 이미 식물을 키우고 있는 것에 해당이 된다. 이렇게 키우는 양태의 변화처럼 우리들 머릿속에 식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인식도 변화되어왔다. 식물을 키우는 것이 넓고 큰 공간에서 공들여 키우는 것처럼 생각되어 전원생활 혹은 주말 농장처럼 여유로운 취미의 하나로 생각했던데 반해, 이제는 책상 위 작은 화분을 키우며 드는 정서적 충전의 의미로 변화 하고 있다. 책상 위의 작은 화분들을 돌보며 우리들은 많은 말을 주고 받는다. 물을 주며 ‘어머 말랐네 목이 많이 말랐겠구나’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말라갔던 식물이 다시 생기를 차릴때 느끼는 행복등과 같이 말없이 자라는 식물을 보며 깊고 다양한 교감을 하게 된다. 식물을 키우며 교감을 느끼는 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동물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생물인 식물에게서 키우는 사람이 식물과 소통을 하며 감정을 교환한다는 것은 매우 재밌는 현상이며 이는 곧 애완동물처럼 식물을 키우는 ‘Petlant’가 탄생하게 되는 감정의 도화선이 되어 준다.

 

애완식물 ‘Petlant’의 등장

‘Petlant’의 시작은 앞서 말했듯이 식물을 키우며 느끼는 감정들에 있다. 하루하루 커가는 꽃과 풀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들과 식물에게서 받았던 교감. ‘Petlant’는 이전에 식물에게서 느꼈던 주인의 감정이 일방적으로 주인이 식물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얻어낸 결과였다면, ‘Petlant’는 애완동물과 주인이 갖는 형태의 교감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애완동물과 주인의 교감은 서로가 서로에게 표현을 함으로써 구축되는 형태이다. 따라서 ‘Petlant’ 또한 비록 식물이지만, 애완동물과 주인간의 교감처럼 쌍방간의 표현과 이해를 가능하게 하여 좀 더 색다른 차원의 커뮤니케이션 또는 교감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Petlant

식물과 식물을 기르는 주인간에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져 좀 더 색다른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식물

‘Monologue’는 아직 컨셉디자인에 지나치지 않지만 이 컨셉디자인이 추구하는 내용들이 고스란히 ‘Petlant’가 추구하는 개념들과 꼭 들어 맞고 있다. 디자이너 강현석에 의하여 디자인된 ‘Monologue’는 식물을 키우는데 있어서 가장 단순하게 영향을 미치는 온도, 습도, 흙의 상태, 물의 양 등의 기초적 요소를 기준으로 하여 부족하거나 풍족하거나 넘치는 정도를 식물이 간단한 감정을 표현하듯이 디스플레이에 식물의 감정 메세지를 표출하여 식물을 기르는 주인이 알게 해준다. 위의 이미지와 같이 온도가 식물이 자라기에 낮은 경우 ‘추워요’라고 말하며 물이 부족한경우에 ‘목이 말라요’등과 같은 표현을 하게 된다. 식물을 기르는 주인에게 있어서 춥다, 목이 마르다 와 닽은 표현을 하는 화분을 가꾸고 기르며 화분의 엄마가 되는 듯한 다시 말해서 애완동물을 기를때 느끼는 그런 종류의 교감을 갖게 한다. 애완동물과 같은 교감은 단순히 감정 표현, 의사 전달에 있지 많은 않다. 몸짓, 행동에 의해서도 이루어지는데 움직일 수 없는 식물에게는 감언이설과 같은 말이 된다. 하지만 다음의 연구결과가 식물도 동물처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주어 주인과의 교감을 더욱 확산해주게 되었다.

‘Interactive plants’는 일본의 the Keio University의 연구팀에 의하여 개발된 제품이다. 단순히 모터와 모션인식 장치를 결합하여 사람의 손짓에 반응하여 식물이 움직이게 하는 제품이지만 대학 연구팀의 연구 목적과 방향에 대해서 들어보면 ‘Petlant’가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먼저 그들은 ‘Interactive plants’을 통하여 식물이 좀 더 생동감있게 살아있어 보이게 하려 하였다. 그래서 좀 더 커진 존재감을 부여하고 몸짓을 통하여 사람과 더욱 확장된 개념의 소통을 이루도록 하려 하였다. 후에 좀 더 다양한 모양과 다양한 크기의 식물에 있어서도 다양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비록 사람의 모션으로 움직이는 초기단계의 모습이지만 식물이 사람에게 반응 하여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이전의 식물과 사람간의 교감의 형태에서 진일보된 ‘Petlant’가 이루고자 하는 쌍방향 교감이 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모습으로는 많은 한계점이 있다. 먼저 단순히 모션 인식이라는 점이다. ‘Petlant’가 식물과 사람의 쌍방향 교감을 목표로 하는데 모션에 반응하는 움직으로는 여전히 일방햑적인 교감이 된다. 하지만 이것이 모션이 아닌 사람의 말에 따라 움직임을 보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이크로폰을 내장하고 언어와 음성을 인식, 이해하는 프로그래밍으로 식물의 움직임을 가한다면 ‘Petlant’가 목표로하는 식물의 쌍방향 교감이 이루어지게 된다. 걱정스러운 말을 건낼때면 한떨기 꽃이 반응을 하여 끄덕여 준다던지 긍정의 대답을 원하는 질문을 할때 풀잎이 고개를 끄덕여 주는등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youtube]http://www.youtube.com/watch?v=iKIg6pARtlk&feature=player_embedded[/youtube]

 

화분 속 강아지 ‘Petlant’

‘Petlant’는 결국은 애완식물의 형태로 논의 될 것이다. 이미 이름에서도 애완동물과 식물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말해서 ‘Petlant’의 개념을 책상위에 앉아있는 애완견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면면을 살펴보자면 애완동물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도 애완동물이 결코 채울 수 없는 부분을 ‘Petlant’는 채우고 있다. 먼저 식물이라는 ‘Petlant’의 본연적 특질에서 ‘Petlant’의 이점들을 찾을 수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음이나 냄새 등과 같이 동물이 안고 있는 본질적 문제에 있다. 결국은 이러한 문제들 덕에 애완동물과 같은 존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애완동물은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다. 하지만 책상위의 애완식물 ‘Petlant’는 조용하며 냄새보다는 향기까지 난다. 애완동물을 키울때 겪는 소음문제나 냄새와 같은것으로부터 해방이 되기에 좀 더 여러사람에게 애완동물이 전할 수있는 느낌을 전할 것이다. 하지만 ‘Petlant’가 이와 같이 애완동물의 대척점에서 애완동물을 완벽하게 보완하기 위해서는

사람과의 교감부분을 좀 더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Monologue’‘Interactive plants’의 결합을 꾀하여 움직임과 함께 메세지 전달을 하게 하여 주인과의 교감부분을 좀 더 다양하게 해야 한다. 물론 그 내용에 있어서도 ‘Petlant’를 기르는 주인이 좀 더 다양한 메세지를 받게 하기위하여 ‘Monologue’에서 식물의 표현을 좀 더 다양하게 해야 할 것이다. 또 위에서 잠깐 언급하였듯이 ‘Interactive plants’ 또한 단순히 모션을 인식하고 나서 움직이는 현재의 모습에서 기르는 사람과 좀 더 감정적으로 연동하여 식물이 움직이도록 해야한다. 언어나 어조의 인식을 통하여 맞치 말을 알아 듣고 움직이거나 때로는 음악에 반응하여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처럼 움직임을 보이는 요인원에서 좀 더 감정적인 연결고리를 찾고 그 움직임 또한 다양화 해야 할 것이다. ‘Monologue’는 단순히 식물을 기르는데 필요한 정보들을 디스플레이에 메세지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고 ‘Interactive plants’는 단순히 좀 더 생동감있는 식물을 원하여 식물에 움직임을 부여 한 것이다. 하지만 이둘이 시사하는 바는 언어와 움직임이 없는 식물에게 언어와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 것이고, 결국 이것들이 기르는 사람과의 교감을 연결고리로 확산시킨다면 애완동물의 기능을 하면서도 애완동물의 단점을 보완하는 진정 ‘Petlant’의 개념이 완성 될 것이다.

 

식물 이제 더 이상 식물이 아니다.

흔히들 식물에게 생명이 있느니 없느니, 영혼이 있느니 없느니에 대한 종교적, 학술적 논쟁이 우리들 뇌리속에 조금씩은 자리잡고 있다. 그것에 대하여 확실한 답을 줄 수 는 없지만 분명 우리들 주위에는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을 기르며 그것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정서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말을 걸어오고 자신의 이야기에 움직임으로 반응하는 식물은 좀 더 색다르고 강력한 감정적 경험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Petlant’를 통해 해결 될 것이다. ‘Petlant’, 앞으로 실내에서 기르는 많은 화분과 식물의 미래 모습이자 변화의 모습이다.

 

답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