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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고 틀어놓는 “트는 TV”에 주목하다 (기획칼럼_3. 대화를 열다)

보지 않고 틀어놓는 배경화면으로써의 “트는 TV”의 등장이 앞으로 매체산업에 가져올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Trend Insight에서 다루었던 지난 칼럼,?보지 않고 틀어놓는 “트는 TV”에 주목하다 (기획칼럼_1. 자연을 장시간 틀어놓다,?기획칼럼 2. 편집과 제약을 없애다)에 이어 “트는 TV”가 가지는 또 하나의 시사점, “3. 대화를 열다”에 대하여 짚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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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삶에서 대화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우리는 눈 뜨는 순간부터 눈 감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누군가와 대화를?하려 한다. 대화는?자신이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가장 원초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화의 결여는 필연적으로 문제를 발생시킨다. 흔히 사회적 질환이라 일컬어지는 우울증의 주 원인 중 하나도 대화의 부재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대화에는 항상 주제가 필요하다. 주제가 없는 대화는?단지 짐승들의 울부짖음과 다를 것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주제는 대화 당사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공유할 수 없는 주제들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대화가?아닌 폭력이다.

 

한국 사회의 대화 주제, TV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대화 주제는 무엇일까?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필자는 TV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다. 일상이 시작되는 피곤한 월요일 아침, 유명 주말 TV 프로그램인 ‘무한도전’과 ‘개콘’의 개그코드만큼 잠을 깨우는 주제가 또 있을까.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여가생활이 단연 TV 시청인 것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역으로 되짚어보면, 한국 사회에서 유명 TV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면 대화가?불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모두들 공유하고 있는 대화 주제를 자신만 모른다면, 이는 사회적 소외감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TV를 본다는 것은 사람들과의 대화를?위한 최소한의 노력의 일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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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는 TV, 단순한 내용으로 대화를 열다

사실 대화의 주제로 TV를 꺼내는 곳은 비단 한국에서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딘가로 나갈 시간은 없고, 편하게 앉아서 여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전 세계 어디나 똑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TV는 전 세계인의 대화 주제를 제공해주는 매개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흐름은 북유럽의 노르웨이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트는 TV는 뭔가 특별하다. 기차 창 밖 풍경만 7시간을 방영하고, 광고 하나 없이 8시간 동안 뜨개질하는 장면만 나오기도 한다.?신기한 것은, 아무도 안 볼 것 같은 이 프로그램이 노르웨이의 인구 절반에 가까운 250만명이 이 프로그램들을 시청한다는 것이다.

한 프로그램에 다양한 요소들을 집어넣으려는 한국 TV 프로그램에 비해, 트는 TV의 내용은 너무 단순하다. ‘기차 창 밖 풍경’, ‘뜨개질’처럼 단순한 단어로도 설명이 가능할 정도다.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왜 그 부분이 웃긴지를 일일이 설명해야 대화가?되는 여타 다른 프로그램과 차별점이 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트는 TV만의 단순한 내용과 긴 러닝타임은 사람들의 TV 시청 방법을 바꾸었다. 보는 TV에서 트는 TV로, 그리고 3인칭의 시점에서 1인칭의 시점으로 말이다. 트는 TV는 여기서 더 나아가, TV로 만들어지는 대화의 주제들까지 바꾸어놓았다.

1. 자연스러운 감정들을 열다.

한국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녹음된 웃음소리이다. 프로그램에서 우스운 부분마다 웃음소리를 틀어줌으로써 웃음을 강제로 전염시키는 방법이다. 점점 더 과해지는 자극적인 소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한 번이라도 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위한 프로그램들의 고육지책이다.

이러한 과도하고 자극적인 프로그램의 설정들은 사람들의 감정들을 강요시킨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엽기에 가까운 웃음이거나, 비참함에 가까운 슬픔과 같이 극단적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요된 감정들이 대화의 주제로 오르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극단적인 감정들은 단순하다. 극단적인 감정들은 본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바탕 자지러질듯 웃고 나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이유도 이와 같다. 그렇기에 이러한 감정들로 만들어지는 대화 또한 결국 단순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TV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이다.

트는 TV는 장시간동안 자연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장면에 아무런 편집기술을 들이밀지 않는다. 자극적이고 억지스러운 감정들이 개입하지 않은 이러한 모습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다양한 감정들을 선사한다. 시청자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의 다양화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다양성으로 연결된다. 트는 TV가 사람들의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2. 세대 전체의 공감을 열다.

많은 TV 프로그램들이 제작과정에서 시청 타겟층을 염두되어 기획된다. 한 세대 내에서 확실하게 공감을 이끌어내어, 유행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방법이다. TV 프로그램에서 종종 나오는 인터넷 용어나,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복고 소재들은 바로 이러한 타겟층 기획의 산물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획은, 거꾸로 말하면 타겟층에서 멀어진 세대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유행에 그리 민감하지 않은 기성세대 및 노년층들에게 요즘의 유명 TV 프로그램은 이해조차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20대들은 기성세대들이 좋아하는 바둑이나 낚시 프로그램을 지루해할 뿐이다. 이러한 공감의 결여는 결국 세대 간의 대화의 부재를 낳게 된다. 서로가 다른 TV 프로그램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트는 TV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연이라는 소재를 통해 타겟층을 전 세대로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별다른 지식이 없더라도, 자연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자연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TV, 대화의 주체에서 객체로 격하되다.

이제 사람들은 트는 TV에 대해 대화를?할 때, 프로그램의 내용을 주제로 삼지 않는다. 내용을 주제로 삼는 순간, 대화는 얼마 넘기지 못해 끊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제 프로그램의 내용보다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떠올렸던 생각들을 가지고 대화를?한다. 그리고 그 주제는 자연 자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자신의 추억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 층 풍부해진다.

이런 대화들은 자연스럽게 TV를 대화의 객체로 끌어내려 버린다. 대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TV가, 이제는 단순히 대화의 보조수단 정도로 격하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엔 사람들의 감정들이, 그리고 공감들이 자리하고 있다. 트는 TV는 사람들의 대화를 열게 해주는 것이다.

 

트는 TV, 영상매체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가.

TV는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콘텐츠에 대한 변화일뿐, TV 전체 트렌드에 대한 변화는 TV의 초창기 시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TV는 우리를 집중하게 만들고, 편집자의 관점으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TV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오늘날, TV를 보는 우리는 무조건적인 수용자가 될 수밖에 없다.

트는 TV는 이러한 트렌드에 변화가 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틀어놓는 TV, 편집자의 눈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TV. 그리고 대화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된 TV로 말이다. 기존의 영상매체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트는 TV가 주목받고 있는 이런 특징들은, 역설적으로 TV의 역할이 그만큼 축소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TV가 주목받는 흐름에서, 자기 자신을 주목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즉, 트는 TV를 통해서 사람들은 수용자를 넘어서 당당한 주체가 되고 있다.

1 Comment

  • Avatar
    Seung gun Lee
    9월 20, 2014 at 8:28 오전

    독특한 관점이시네요. 특히나 장시간 tv가 거꾸로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준다는 생각에 눈이 갔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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