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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고 틀어놓는 “트는 TV”에 주목하다 (기획칼럼_2. 편집과 연출의 제약을 없애다)

보지 않고 틀어놓는 배경화면으로써의 “트는 TV”의 등장이 앞으로 매체산업에 가져올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Trend Insight에서 다루었던 지난 칼럼, 보지 않고 틀어놓는 “트는 TV”에 주목하다 (기획칼럼_1. 자연을 장시간 틀어놓다)에 이어 “트는 TV”가 가지는 또 하나의 시사점에 대하여 짚어 보려고 한다.

 

‘트는 TV’?:?연출, 편집으로 요약되지 않은 그대로의 것을 전달한다

  • Ch.3 오토바이를 타고 그리스를 질주하다.?

[youtube http://www.youtube.com/watch?v=XWL1-q8y2Os]

트는 TV의 열풍은 위와 같은 영상을 통하여서도 엿볼 수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유럽 곳곳을 여행하는 이 채널은 일반인 촬영자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그리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럽의 소도시 풍경을 담고 있다. 정식 TV 채널은 아니지만, 트는 TV가 가진 중요한 특징을 잘 살려서 ‘패러디’했다고 볼 수 있다. 한 눈에 봐도 우리가 흔히 아는 기존의 TV채널과는 많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는데, 도데체 트는 TV의 어떠한 특징, 어떠한 니즈가 이러한 영상들을 줄줄이 등장시킨 것일까?

트는 TV는 최소화된 편집과 연출로 장면을 전달한다. 이는 연출자의 해석과 개입이 최소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TV는 연출자가 보고 느낀 것을 요약하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편집을 한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라는 것이 기존의 많은 프로그램들에서 사용되어 왔고, 그것의 의도가 명확할수록 더욱 강한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는 TV는 반대이다. 연출과 편집이 거의 없다. 연출과 편집이 없다는 것은 장면의 끊김이 없다는 것이다. 장면을 그대로 화면을 통해 전달해 주어, 기존 TV 프로그램에 존재했던 정해진 공간, 스토리, 시간의 벽을 허물었다.

 

날 것 그대로 전달된다. 그리고 나의 눈으로 본다.

제목 없음

숲 속을 달리는 기차가 있다. 기존의 TV는 숲 속을 달리는 기차를 허공의 카메라를 통해 관찰하고, 담아낸다. 혹은 달리는 기차의 불꽃 튀는 바퀴를 보여준다. 이는 기차가 숲 속을 헤치고 부단히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어 여정의 순간, 혹은 목적지를 위해 달리는 과정을 보여주거나 바퀴의 속도감을 전달하고자 하는 등 연출자의 어떠한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반면 트는 TV는 기차가 달리면서 접하는 장면들을 아무런 편집자의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보여 준다. 기차가 달리며 거치는 장면을 그대로 담아낸다. 따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의 모습이 몇 십분 동안 보여지기도 하고, 여러 역에 멈추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모습이 보여지는 등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없다. 내가 기차를 타고 며칠 동안 여행하면서 창 밖을 스쳐 지나갔던 장면들과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왜 편집이 없는 장면을 “틀어두는가?”

기존 TV채널은 한정된 시간 동안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맞게 짜여진 요약된 내용을 보여준다. 요약되었기 때문에 어느 한 장면이라도 놓치면 흥미와 재미가 떨어지게 되므로 보는 사람들 또한 그 시간 동안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마치 한 시간 정도의 시간에 맞게 재구성된 짜여진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과 같다.

반면 틀어두는 TV, 트는 TV는 보는 사람 앞에 놓여진 화면에 날 것의 장면이 그대로 펼쳐진다. 트는 TV는 보는 사람을 장면에 집중하게 만들지 않는다. 시청자가 재미 없어 할 것 같은 부분을 잘라내거나 시청자가 보지 않을 것 같은 시간에는 방영하지 않는 일도 트는 TV에서는 없다. ‘카메라’이라는 수단은 시청자가 당장 눈 앞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을 전달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지 어떠한 의도도, 시각이나 견해도 담겨있지 않다.

마치 창문 밖을 바라보듯이, 끊김 없이 그대로 전달되는 장면을 보며 시청자는 그것을 스스로 해석한다. 그저 배경처럼 장면을 틀어 둠으로써 연출자의 감정, 연출자의 경험을 전달받는 것이 아닌 시청자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해석하고 경험한다. 따라서 최소화된 편집과 연출은 시청자가 날 것 그대로의 경험, 실질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트는 TV, 당신의 경험을 좀 나누어 주실래요?

트는 TV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연출’이라 할 만한 것은 1인칭 시점의 화면 구성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연출자의 관점을 빌려서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한다. 그리고 트는 TV를 통해 전달되는 사실적인 경험을 더욱 현실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1인칭 시점의 연출이다. 1인칭 시점으로 장면을 바라봄으로써, 현실이 아닐지라도 마치 그 상황 속에 존재하는 듯한 현존감을 느낄 수 있다.

1인칭 시점은 촬영자가 보는 것을 가장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러한 특징은 위의 Go Pro를 사용한 영상처럼 방송사가 제작한 채널이 아닌 일반인 제작자의 영상물들을 등장시켰다. 트는 TV의 시초, 노르웨이의 방송사가 제작한 Slow TV에 대한 열풍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유튜브에서는 이러한 영상들을 제작하는 개인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연출과 편집을 하지 않으니 제작이 어렵지 않을 뿐더러, 시청자가 다른 경험을 직접적으로 얻는다’는 니즈에서 ‘촬영자가 자신의 경험을 대중과 공유하다’는 니즈로 확장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더욱 세부적이고 다양한 경험의 전달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창문 밖의 풍경을 원하는 다른 곳으로 바꿀 수 있는 것처럼, 트는 TV를 통해 시청자는 세상의 어느 곳이든 경험할 수 있다.

 

당신의 삶에 새로운 창문을 달아 드릴게요.

트는 TV는 현대인이 마치 꿈을 꾸듯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창문과도 같은 통로이다. 그리고 이 창문을 통해 최소화 된 편집으로 지구의 다른 한 부분의 세상을 전달한다. 이제 트는 TV라는 창문을 열기만 하면 펼쳐지는 세상에 그대로 빠져들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의 시선을 빌려와 보는 것이 아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 경험은 그 누구의 의도대로 짜여진 것이 아니며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같은 일상 패턴을 가진 갇힌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창문은 더더욱 필요하다.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잘 짜여진 드라마 등 TV의 여러 채널들을 통해 간접적인 삶을 살고, 간접적인 기분을 느껴왔다. 손에 쥔 리모컨으로 어디든 경험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경험들은 네모 상자 안에 갇혀 있었으며,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도 그다지 통쾌한 해방감을 누리지는 못해 찝찝했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다시 구성한 ‘만들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는TV는 TV를 틀어둠으로써 시청자가 위치해 있는 공간을 TV속의 장면과 일직선상에 놓았고, 그들이 더 이상 다른 경험을 빌려오는 간접적 경험이 아닌 직접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제는 트는 TV가 언제 어디서나 지겨운 일상 공간을 새로운 경험의 장으로 만들어 줄 것이며, 새로운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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