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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축제의 발전 가능성을 본다

축제는 공연이나 전시회가 아니다

2011년 올 한 해 우리나라는 약 1100여건의 축제가 개최되었거나 아직 예정에 있다. 소득이 증가하고 여가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지역의 관광자원개발의 일환으로 축제는 꾸준히 늘어나고 연례행사로써 진행되고 있다. 주변을 둘러봐도 매 시기마다 지역별 특색을 반영한 축제들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축제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변의 축제는 어떤 모습인가. 마치 박람회를 보듯이 축제장소를 쭉 돌아보고 나오면 공연을 관람하듯이 행사를 보고나면 우리는 비로소 “축제를 즐겼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축제를 돌아볼 시간이다.

 

전통축제문화의 소실

우리나라의 문화를 돌이켜보면 고대의 제례는 여타의 고대사회의 종교행사와 마찮가지로 일종의 축제였다. 이것은 국가에서 주도하는 축제로써 조선초까지 발전해왔으며, 민간축제도 마찬가지로 굿의 형태로써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지역의 안녕과 풍년 등을 기원하며 모두가 즐기는 축제의 형태를 우리의 고대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의 축제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 ‘조선후기 성리학의 도입으로 놀이문화의 지위가 격하되고 일제강점시대와 급속한 근대화를 거치며 마을단위로 성하였던 축제문화가 사라졌고, 전쟁과 경제제일주의를 겪으며 축제문화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라고 배워왔으며 현재 우리시대의 축제가 보여주는 한계는 여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조선후기의 체면을 중요시하던 생활태도는 이후로 급속한 경제성장의 조직문화 속에서 올바르고 튀지 않는 이미지 관리로 굳어져버렸다. 이는 사회전반에 영향을 주었는데 새롭게 생성되는 축제에도 적용이 되어, 지역민의 참여를 유도하기 보다는 주최측의 행사로써 지역민은 축제를 보러 오는 관람객의 관광수익을 기대하는데 그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축제를 우리 모두가 ‘즐겼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관람을 하고 구경을 하고 오는 것이 축제를 즐기고 온 것인가 공연을 관람한 것인가 전시회를 둘러본 것인가 말이다.

물론 축제의 유형에따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무궁무진한 컨텐츠의 시대에 축제의 유형이 모두의 참여를 제한하는 요소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불어 참여의 형태로 발전시키기 쉬운 전통 민속축제나 관광축제의 비중이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 축제의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무게를 잃어버린 닻

우리의 오래된 축제의 뿌리를 살펴보면 한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농사의 시작과 끝을, 한해의 시작과 끝을, 더 나아가 마을 단위 중요한 일의 시작과 끝을 위한 행사로써 열렸던 축제는 공동이라는 것, 모두가 하나되는 장 이었음을 우리의 몸은 잊고 있지만 지식으로써 우리의 머리 속에 남아있다. 우리는 두레와 품앗이를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마을의 일 뿐만 아니라 경조행사를 함께 했던 두레는 전통축제의 뿌리이며, 공동체라는 정신의 표현인 ‘하나 됨’이라는 것은 우리 축제문화의 닻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의 닻은 무게를 잃어버렸다.

빠른 산업화로 잃어버린 것은 전통축제문화 뿐만이 아니다. 잘못된 공동체주의로 변질된 다양한 인연들. 전혀 처음 보는 사람끼리 쉽게 친화 될 수 있지만 내집단이 아닌 경우엔 크게 거부하는 이기주의적인 인연으로 변질되었다. 산업시대를 지나 정보화시대에 들어선 변질된 공동체주의는 점점 나를 현실에서 드러내는 것을 감추면서 자신과 공통점을 찾으려고만 하는 식으로 악화되어가고 있다. 다시 이러한 점은 축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 내가 관계된 축제가 아니니까, 보는 것만으로 족하니까 라는 두터운 의식에 가로막혀 하나 됨은 밖으로 표출 될 수 없게 되었다. 난파선이 되어버린 우리의 축제문화를 다시 크게 복원해내는데는 성공한 듯 보이지만, 그 닻의 무게가 배에 전달되지 않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되는 축제로의 가능성

다행히도 모든 축제들이 주최측이 준비한 행사를 보고 듣고 지나가는 행위만으로 끝나는 형태를 보이지는 않는다.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예로는 ‘보령 머드축제’가 있다. 상품이자 동시에 자연물인 자연의 갯벌을 이용한 축제로 참여자들이 별도의 준비를 하지 않더라도 주최측이 준비한 장소에서 행사를 즐기며 모두가 손쉽게 축제에 참여해 머드풀에서 뒹굴며 웃을 수 있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머드축제가 처을부터 순탄하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지는 않았다. 결국 머드축제는 외국의 힘을 빌려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자원봉사로 받은 미군의 개방적인 참여가 궁극적으로 내국인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는 바캉스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즐기는 행사를 벗어나 머드축제 안에서 하나 됨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축제로써 발전한 것이다. 전통축제문화의 소실을 외국인의 힘을 빌렸지만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해결방법을 찾은 것이다.

 

한국축제의 방향

일반적으로 지역민의 연대감 고취를 목표로 하거나 관광산업발전을 목표로하는 축제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다수가 성과없이 사라진 현상을 보면 단지 준비된 컨텐츠의 재생과 국민의 특성을 무시한 축제의 설계가 우리의 축제문화에서 얼마나 위험한 문제인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보령 머드축제’처럼 처음부터 모든 목표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또 인위적이고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축제도 지역민과의 융합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문화의 강제적 이식은 특히 타문화에 폐쇄적인 우리에게 반발심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타인의 시선을 중요시하는 우리 문화적 특색은 치밀한 계획만으로 축제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머드축제의 성공은 우리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보여주고 있다. 촉진제의 영향을 받아 증폭된 국민들의 축제참여와 즐기는 모습은 소실되었던 우리 축제의 본능이 사람들 내면에 하나하나 심해에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지역구성원이 축제에 직접 참여하며 먼저 즐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 모습을 통해 축제를 보고 즐기기위해 온 사람들도 마침내 축제를 즐기고 다시 찾을 수 있는 관광상품으로써 발전할 한국 축제문화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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