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들을 구원하라, 수트서플라이(SUIT SUPPLY)

여성복 디자이너를 주인공으로 하거나 패션회사를 무대로 하는 드라마는 많았다. 그러나 지난 8월부터 한 방송국에서 방영을 시작한 주말 연속극은 국내의 멘즈웨어 테일러를 그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리고 이런 테일러가 드라마의 소재가 된다는 것은 아재들의 것, 회사에서의 근무복으로만 여겨졌던 수트가 좀더 일상적인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클래식에 대한 벽이 허물어지는 이러한 인식적 변화처럼 시장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목격되고 있다. 멘즈웨어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국내 런칭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장을 보통 사람의 일상복으로 진입시키는 불가능의 미션을 성공시킨 네덜란드의 멘즈웨어 브랜드, 바로 수트서플라이(SUIT SUPPL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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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ACK, 수트서플라이
소수의 테일러가 브랜드를 상징하는 아이덴티티가 되는, 그리고 역사적인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는 클래식 멘즈웨어 시장의 특성상 지금까지 이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출발한 브랜드들이었다. 그러나 수트서플라이는 고작 16년 전에 네덜란드에서 출발했다. 게다가 네덜란드는 비단 멘즈웨어 시장이 아니더라도 패션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는 나라였는데 말이다.

상술했듯이 수트서플라이의 시작은 지난 2000년이었고, 당연히 백 년이 넘은 테일러샵에서 출발한 이탈리아 브랜드들이 무기로 삼는 전통적인 테일러링 기법,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 헤리티지 등을 가질 수 없었다. 때문에 수트서플라이가 멘즈웨어 시장에서 대중적인 영역으로 접근한 것은 선택보다는 필수에 가까웠다. 실제로 관습과 규칙을 중시하는 클래식 멘즈웨어 브랜드들은 정해진 마케팅 활동만 해왔는데, 예를 들어 비스포크 수트라는 최고급 상품을 광고의 전면에 내세우고 그 상품에서 출발한 이미지가 광고 전체를 지배하게 하는 식이었다. 즉, 이들 브랜드는 고객들에게 브랜드가 아니라 상품을 말해왔다. 쉽게 입을 수 없고, 쉽게 만들 수도 없는 럭셔리한 상품 자체가 이들의 가장 큰 무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트서플라이는 상품이 아니라 브랜드와 이미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일관되지만 다양한 이미지, 클래식을 입고 있으나 역동적이고 젋은 모델들의 에너지로 가득찬 화보들은 멘즈웨어 시장에 수트서플라이라는 크랙의 진입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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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성벽에 일어나는 작은 균열
잔잔한 연못일수록 작은 돌이 만드는 파장은 크고 멀리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클래식 멘즈웨어 브랜드들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무기로 공고하게 유지해오던 연못에 수트서플라이가 일으키고 있는, 성공이라는 이름의 파장을 하나하나 분석해보자.

첫번째 균열, 매스 커스터마이징(Mass-Customizing)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비슷해보이는 수트지만 그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단 하나도 같지 않다. 더구나 한 사람 한 사람에 몸에 따라서 다르게 재단되는 비스포크 수트라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수트가 만들어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선호이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특별한 선호가 없거나, 혹은 비현실적인 기준을 가지고 테일러와 상담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즉,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테일러의 역량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정성적인 커스터마이징은 신규 진입자에 대한 높은 장벽이면서도 기존 시장에 대한 공고한 방어벽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그 시장에 밖에서는 어느새 커스터마이징은 물론이고 퍼스널라이징(Personalizing) 트렌드까지 도래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소비자들은 단 하나의 상품을 사더라도 자기의 감각과 의도가 가미된 상품을 구매하기를 원한다. 즉, 커스터마이징은 멘즈웨어 브랜드들이 갖는 유니크한 장점이 아니라 그 시장적인 특징에 지나지 않게 됐다. 다시 말해 굉장히 높은 난이도의 커스터마이징이 만들어온 비스포크 수트의 장벽, 뛰어난 역량의 테일러와 함꼐 쌓아온 역사를 통해 구축해온 클래식 브랜드들의 헤리티지가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낮아진 장벽을 가장 먼저 넘어서는 브랜드가 바로 수트서플라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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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서플라이는 소비자에게 멘즈웨어의 법칙을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지도 않는다. 베스트셀러부터 정말 소수의 사람만이 선택하는 다양한 원단뜰,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 몸에 맞출 수 있는 여러개의 핏, 그리고 이를 조화시켜 만들어낸 남성복의 모든 아이템들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이에 더해 매장에 상주하는 전문 테일러는 위 포트폴리오 안에서 진행된 소비자 훈련이 채우지 못하 빈자리를 채움으로써 매스 커스터마이징이라는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시켜 왔다.

두번째 균열, 합리적인 가격
앞서 언급했듯이 기존의 클래식 브랜드들은 소비자 개인의 기준을 테일러의 경력이라는 정성적인 요소로만 충족시켜 왔다. 그러나 수트서플라이는 이를 경제적인 관점으로 접근했고,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폭넓은 선택지(원단, 핏, 라인 등)를 구성해놓고 매장으로 들어오는 많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고자 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이러한 포트폴리오 내에서 이뤄지는 소비자들의 선택은 이 포트폴리오들을 재강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더 많이 선택받을 수 있는 상품들로 점점 포트폴리오가 구성되면서 당연히 개별 상품의 가격은 하락하고, 더 좋은 상품을 더 낮은 가격에 책정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와 함께 하는 포트폴리오의 발전적 재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수트서플라이는 클래식 엔트리 소비자들에게는 확실한 성공의 이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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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서플라이가 유럽에서 거둔 성공을 우리 나라에서도 거둘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성공할 것이라 말했던 월마트는 두 손을 들었고, 이케아는 여전히 성업 중인 곳이 한국시장이다. 그러나 수트서플라이가 성공하기 위해서 집중해야 하는 고객들이 누구일지에 대해서는 예상할 수 있다.

첫째, 전환 예상 고객
한편으로 보면 우리나라만큼 클래식 멘즈웨어 브랜드들에게 매력적인 시장도 없다. 아재 양복을 강요 받고 있는 많은 직장인들이 내딛을 다음 걸음은 결국 비즈니스 캐주얼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아재양복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른 이탈리아 브랜드로 진입할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흥미가 있다 하더라도 그 높은 가격과 직장에서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하는 이들 초기 소비자들은 아직까지는 백화점으로 가고, 국내 기성브랜드들을 선택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들이 조금 더 성장해 국내 브랜드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시점, 그러나 이탈리아 브랜드와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하는 그 시기에 선택할 수 있는 브랜드가 바로 수트서플라이이다.

둘째, 이탈 예상 고객
시장의 글로벌화는 멘즈웨어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정도 성장한 소비자들은 국내 시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외국으로 향한다. 국내 브랜드들은 이들의 높아진 기준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국내에 런칭한 외국 브랜드들의 가격표는 이들의 눈을 돌아가게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수트서플라이가 갖고 있는 상품포트폴리오의 폭은 기존의 국내 브랜드가 가져본 적도 없고, 가질 수도 없었던 특징이다. 즉, 이를 통해 더 높은 곳을 향해 이탈하는 소비자들 중 일부는 이 포트폴리오 내에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수용할 수 있는 소비자의 범위가 아주 긴 수트서플라이의 포트폴리오는 초기 진입 고객을 그 플랫폼 내에서 성장시킬 수 있다. 즉, 매 구매행위마다 조금씩 발전된 선택을 하는 소비자들을 일정부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파격적인 변화보다는 일정 부분 안정적인 재강화가 필요한 멘즈웨어의 특징에 부합하는 수트서플라이의 가장 큰 무기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CRACK이 필요하다.
그렇게 멋 부렸던 고등학교 시절, 정점을 찍는 대학교를 지나느라 모든 힘이 다 빠져서일까? 정장만 입으면 모든 남자들이 똑같아지는 형국이다. 어릴 때는 몸에 딱 붙는 남색 정장, 직위가 올라가면서 조금씩 넉넉해지는 남색 정장으로 갈아입는다. 여름엔 얇은 남색 정장, 겨울엔 두꺼운 남색 정장을 입는다. 엄마가 보기에는 똑같이 보이는 운동화를 살 때도 수십개를 비교했던 우리가 어느새 이렇게 변했다.

일거에 고등학교 시절에 그 열정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같은 남색 정장이라도 핏과 원단에 따라 천차만별의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기 전에는 느낄 수 없는 것도 맞는 말이다. 고로 우리에게는 수트가 교복이 아니라 패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한 번의 도전이 필요하다. 마치 수트서플라이가 고루한 클래식의 성벽에 균열을 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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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찬

김정찬

김정찬(JungChanKim) Editor / 똑같은 상품이라도 전달되는 방식에 따라 수명을 달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트렌드인사이터로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Brand Manager로서의 speciality를 키워나가기 위한 안테나를 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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