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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향한 당당한 발걸음, 아티-인플루언서의 등장

1. 여기 한 소녀가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이 소녀는 음악을 사랑하여 개인 작업실에서 작곡을 하고 있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한다. 패셔너블 한 옷 스타일때문에 종종 업로드하는 데일리 룩이 팔로워들의 관심을 받는다.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일상 혹은 그와 상반되게 패션쇼에 참가해 유명 셀럽과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 상에 공개하기도 하는, 그야말로 ‘힙하다’ 는 표현이 어울리는 당찬 소녀이다.

2. 글로벌 인기 스타 리한나가 런칭한 펜티 뷰티(FENTY BEAUTY)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한 모델의 사진이 업로드 되었다. 인기 립스틱 제품의 오렌지 립 컬러를 홍보하기 위해 업로드 된 사진에는 “Model: shudu.gram”라는 문구로 “슈두” 여성 모델의 인스타그램이 태그 되어 있었다. 유래없이 완벽한 신인 모델의 등장에 사람들은 의심을 품었다. 어떤 이는 이 신인 모델에게 영감을 받기도 하였으며, 어떤 이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 모델의 정체를 파악하려들기 시작했다. 과연 그녀는 실존 인물이었을까? 과연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좌: Lil miquela (@lilmiquela) 우: Shdu (@Shudu.gram)

아티-인플루언서 (Artificial + Influencer)의 탄생

사진을 보고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두 사례 모두 실존하는 사람들이 아닌, 그래픽 기술로 창조된 ‘사람’들이다. 첫 번째 케이스의 소녀 릴 미켈라 (@lilmiquela)의 경우 명품 브랜드의 모델로, 잡지 모델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모델 슈두 (@shdu.gram)는 포토그래퍼로 태그되어있던 제작자 카메론 제임스 윌슨이 “슈두는 내가 탄생시킨 모델”이라고 발표하는 것으로 해프닝을 마무리지었다. 이 둘은 각각 4월 말 기준 110만, 11만 팔로워를 기록하며 일반 사람들보다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굳이 칭호를 붙여야 한다면 온라인 상에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인플루언서 (Influencer) 아닌 ‘아티-인플루언서’ (Artificial + Influencer)라고 하겠다.

아티-인플루언서는 사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미 대중화된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 미디어에는 소위 말하는 “네임드 계정” 이라는 유명 계정들이 있다. 한국민속촌의 “아씨” 등 단체 대표 계정에서부터 “세종대왕”, “칸트” 등의 유명 인물, 무생물인 “에밀레종”에서부터 동물을 표방하는 “월요일이되면짖는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정이 존재한다. 각각의 계정은 고유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고, 각각의 캐릭터를 강화하는 선에서 유머러스한 글을 남겨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회자되었다.

시각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미 인간의 역할을 가상의 존재가 대체한 케이스도 있다. 누구보다도 실제 인물이 필요할 것 같은 명품 패션 브랜드에서 파격적인 실험을 진행했었다. 2016년 루이비통은 S/S 시즌 모델로 밀레니얼을 대표하는 모델들과 함께 유명 게임 ‘파이널 판타지’의 주인공 라이트닝을 모델로 선정했다. 광고 캠페인과 화보 속에서 루이비통의 신제품을 입고 들고 당당하게 포즈를 취하는 라이트닝의 모습은 유서 깊은 명품 브랜드라는 루이비통에 대한 이미지를 깨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한 단계 더 발전한 존재들이 등장하였다. 릴 미켈라와 슈두. 아티-인플루언서는 이미 온라인 상에 존재해왔던 역할놀이의 개념과 이를 실체화할 수 있는 시각화 기술이 적절히 만나 발전하게 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이질감, 아티-인플루언서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키워드

“릴 미켈라와 슈두에 대한 대중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라는 주장은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는 그들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 숫자로 증명이 될 것 같다. 대중은 왜 이 두 존재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일까. 단순히 첨단 기술의 결과물을 눈 앞에 볼 수 있다는 신기함 때문일까?

두 아티-인플루언서들이 인공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라는 점은 제작자 자신들의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이미 밝혀진 사실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스타그램 상에서 ‘만들어졌다’라는 표현을 하기 힘들도록 모습이 노출된다. 릴 미켈라는 음악, 미술을 포함하여 패션 전반에 관심이 많은 소녀, 진로를 생각하며 사회문제에 자신의 주관을 나타낼 줄 아는 개성이 뚜렷한 자유분방한 소녀로 그려진다. 게시물 전체에서 그녀의 일상 그리고 관심사를 통해 일관되고 확고한 캐릭터를 파악할 수 있다. 슈두는 릴 미켈라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이다. 실제로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걷거나 야외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들을 보면 실제 모델 사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이질감을 느낄 수 없다. 고도로 발달된 시각화 기술을 통해 실존 인물처럼 느껴지도록 표현된 케이스라고 하겠다.

이렇게 실제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이들의 ‘캐릭터’는 대중들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라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확고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점이 부딪치며 대중들로 하여금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티-인플루언서, 산업으로서의 가능성

릴 미켈라와 슈두는 특정 브랜드를 위해 또는 수익을 위해 탄생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그 가치와 영향력을 인정받아 패션 브랜드, 뷰티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행보를 주목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으며 아티-인플루언서의 가능성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다. 이렇기에 향후 이들의 뒤를 이을 차세대 아티-인플루언서들의 탄생은 릴 미켈라와 슈두와는 또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과 같은 존재들을 탄생시키는 시각화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향후 기업, 단체, 혹은 특정 목적을 가진 개인을 위해 아티-인플루언서를 제공하고 운영하는 산업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입장에서 아티-인플루언서를 기용하게 되는 것은 상당히 효율적인 일이다. 현재 광고를 집행하고 브랜딩 활동을 하는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유명 인사를 기업의 대표 모델로 선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유명 인사를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업은 리스크를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자. 얼마나 많은 연예인들이 온라인 상에서 손가락을 잘못 놀려 물의를 일으켰는지… 계약서상으로 리스크를 벌충할 수 있는 방안을 갖춰놓는다고는 하나, 오히려 기업의 전략이 훼손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인을 기용하는 것보다는 아티-인플루언서를 기용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 기업이 주체가 되어 홍보 모델을 가상으로 창조하여 브랜딩 전략에 활용할 수 있다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발전하고 있는 AR 기술과의 결합으로 아티-인플루언서의 노출 영역 확장을 예상해 볼 수 있겠다. 이미지로만 표현되던 아티-인플루언서들을 영상으로, PC 모니터/모바일 안에서만 노출되던 이들의 활동 반경을 집/길거리 등의 일상으로 스며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기업에게 의뢰를 받아 아티-인플루언서들을 창조해내고, 관리를 대행하는 전문적인 매니징 산업이 새로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소셜 미디어 채널 상의 인플루언서를 매니징하며 기업의 제품, 브랜드 홍보 마케팅 의뢰를 받아 연결하는 홍보 대행사의 영역이 가상의 영역으로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차세대 아티-인플루언서에 대한 기대

고도로 발전된 기술 사회에 대한 선망이 가득했던 21세기 초반, 이미 아티-인플루언서의 존재를 예견한 영화가 있다. 영화 시몬 (Simone, 2002)에서 영화 감독 빅터 타란스키는 자신의 팬이 남긴 고도의 프로그램을 통해 사이버 여배우 시몬을 탄생시킨다. 영화 초반 빅터는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를 받는 시몬의 존재에 대해 대중을 속였다는 점에 죄책감을 느끼며 시몬이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한다.

가상의 존재들이 일상화된 2018년은 영화 시몬에서 그려졌던 사회 분위기와는 다른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가상임이 밝혀진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은 관심을 받으며 성장해나가고 있다. 향후에도 아티-인플루언서들의 활발한 활동과 성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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