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s-serif

Aa

Serif

Aa

Font size

+ -

Line height

+ -
Light
Dark
Sepia

도시가 꿈꾸는 푸른 농장, 한국형 도시 농업을 생각하다

누구나 한번쯤 꿔보게 되는 꿈

2018년 상반기, 대한민국의 2030 세대 사이에서 유독 히트한 영화가 있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도시의 일상 생활에 지친 20대 여성 주인공이 고향인 농촌에 돌아와 1년을 보내며, 자연과 사람들의 교류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고 힘을 얻는다는 내용의 힐링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영화는 내용 그 자체로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지만, 영화에서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제철 음식 역시 화재가 되었다. 밭에서 갓 따온 배추를 넣어 끓인 된장국, 길 옆에 핀 나무에서 얹은 아카시아 꽃 튀김, 정자에 앉아 ‘아삭’ 토마토를 씹는 모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법한 낭만적인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곳, 삶의 방식을 되찾을 수 있는 곳,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장소인 ‘나만의 작은 숲’을 개척하고, 살아갈 힘을 얻은 후 다시 도시로 돌아가게 된다. 영화를 본 후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다 보면 몇몇 분들은 나와 같은 생각에 도달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꼭 농촌에서만 가능할까? 고향이 도시인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
영화에서 말하는 추상적인 관념의 ‘작은 숲’ 은 아니지만, 도시에서 자신만의 실제 ‘작은 숲’을 가꿔가며 몸과 마음의 건강한 삶을 추구해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도시 농업’(Urban Agriculture) 라는 개념은 도시 내부 곳곳에 남아있는 소규모 토지를 이용하여 농업을 하려는 움직임이다. 정의상 ‘토지’ 라고 표현하였으나, 사실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면’이라면 어디든지 시도가 가능하기 때문에 주로 옥상, 아파트 테라스 등을 이용한다.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국가와 기업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로, 한국에서는 2010년대에 개념이 도입되어 소규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지방 자치 단체에서도 관심을 갖으며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다.

IKEA Space 10 (https://space10.io/lokal/)

도시 농업에는 ‘손맛’이 필요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지방 자치 단체와 정부에서 도시 농업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도시 농업이 그 자체로 도시 가치를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방치되어 낭비되는 토지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과 식물을 재배함으로써 도시 동∙식물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농업을 수행하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지역사회 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함으로써 소외된 구성원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정책 분야에서 도시 농업을 찬성하는 입장이다.

한국 사회 내 도시 농업이 개인들에게 관심을 받는 주요한 이유는 자기 자신의 ‘치유’, ‘힐링’, 그리고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서일 것이다. 정신적인 여유가 없는 도시 생활에서 작물을 기르는 행위라는 생산적인 여가 활동을 함으로써 정신과 건강의 ‘힐링’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이유이다. 도시 생활에서는 경험해볼 수 없었던, 직접 가꾸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을 통해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덧붙여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기른 작물을 먹는 것만큼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국 사회의 개인들이 ‘커뮤니티성’에 주요하게 초점을 맞춰 도시 농업에 관심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회생활에 지친 이들이 찾는 ‘작은 숲’이 도시 농업이기에, 강압적 교류가 없는 소박한 규모의 개인 텃밭이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농업으로 발생하는 이익률, 수익률보다는 개인의 힐링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자동화된 설비보다 실제로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손맛’을 볼 수 있는 형태가 주류가 되고 있다.

꿈은 마냥 달콤하기만 할까?

꿈이 꿈이라고 여겨지는데는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다. 도시 농업이 사람들의 로망으로 존재하지만, 주류로 부상하지 못한 이유로 크게 2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첫 번째 이유는 도시 농업 서비스의 공급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장소가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아주 작은 규모라도 농업을 시작하기 위해선 토지가 필요하다. 면적의 몇 십배를 초과한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 살고 있는 한국 땅은 좁쌀 만한 땅이라도 비싸다. 지방 자치 단체, 개인 모두 감당하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에 양측 모두 쉽게 시도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주말농장’이라는, 주말마다 농지를 대여하는 농장에 모여 농사를 짓는 형태가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가족단위가 아닌 개인이 대여하기에는 넓은 농지, 그리고 교외에 위치해 원하는 만큼 방문하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두 번째 이유로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초심자가 혼자 시작하기 어려운, 경험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땅 고르고 씨 뿌리고 물만 준다고해서 작물이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기르기 쉬운 모종이라도 씨앗에서 열매를 맺기까지 세심한 관찰과 케어가 필요하다. 목표가 건강한 작물로 자급자족하는 것이라면 품질을 높이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재배에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환경에 예민하게 각각 반응하는 것이 식물이기에 책이나 인터넷으로만 읽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는 미묘한 문제들에 부딪히게 된다. 한 마디로 힐링하려다 새로운 스트레스만 키우게되는, 뒷통수를 맞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만 있었을까? 뜻이 있다면 길을 찾기 마련이다. 도시 농업 시작의 가장 큰 걸림돌인 장소와 경험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작은 움직임들이 세계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장소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 ‘LA CAVERNE’, ‘Leafy Green Machine’

LA CAVERNE (https://lacaverne.co/en/concept/)

‘도시의 땅은 이미 포화 상태’ 라는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프랑스의 LA CAVERNE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 농업을 시도하고 있다. 건물 밑 버려진 지하 주차장을 활용하는 형태로, 약 1,000평 (37,700 Square)의 농지를 확보한 것이다. 수경재배 시스템을 확보한 후 햇빛이 필요 없는 버섯류 작물을 재배하는 형태로 도시농업을 수행하고 있다. 구매를 원하는 레스토랑과 개인에게 배달되는 형태로 이 곳에서 재배된 작물들을 판매하고 있다. 주거지와 매우 근접한 지하 주차장에 농경지가 위치해 있어 말 그대로 정말 ‘신선한’ 작물들을 배달 할 수 있다.

Leafy Green Machine (https://www.freightfarms.com)

농촌만큼 농사지를 땅이 부족하다면, 새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 Leafy Green Machine에서는 이동식 컨테이너를 활용한 농업 머신을 개발하여 출시했다. 컨테이너 박스 안 공간을 활용하여 발아에서 재배, 수확에 이르기까지생산성 높은 재배 시설을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햇빛을 볼 필요가 없게끔 LED 라이트를 이용해 빛을 제공하며, 순환 수경 시스템을 구축하여 일반 농업에서 사용하는 물의 양보다 98%를 절약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컨테이너에 직접 들어가지 않아도, 사용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내부 상황을 모니터링 할 수 있다. 본래는 지형∙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농업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만들어진 컨테이너이다. 하지만 밭을 만들기 위해 건물이나 기반시설을 파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일반 농법에 비해 자원이 덜 소모된다는 점에서, 농지가 부족한 도심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모델이다.

초심자의 부담을 줄이는 시도 ‘Aggressively Organic Micro Dendritic Pod’, ‘Plantui 6’

Aggressively Organic (https://offers.aggressivelyorganic.com/)

작물 재배 초심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확한 가이드를 줄 수 있는 멘토이겠지만, 그 마저도 없다면 일단 시도해서 많은 경험을 쌓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Aggressively Organic의 간편 식물 재배 키트인 Micro Dendritic Pod는 경험을 쌓은 후 재배 면적을 확대하려는 초심자를 위한 좋은 출발 키트가 될 것 같다.

이 단체에서 판매하는 Micro Dendritic Pod는 키트 안에 이 단체만의 독특한 영양 공급 물질을 갖추고 있으며, 특허 출원 중에 있다고 한다. 키트 자체의 구성을 매우 간단하다. 씨앗과 코코넛 섬유로 만들어진 필터와 카드 보드로 구성되어 있다. 작물을 부엌에서 직접 재배하여 먹자는 취지에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게끔 작은 사이즈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한 가지 품목 재배에 익숙해진 후 더 많은 품종을 재배하거나 재배 면적을 늘리고 싶은 경우 키트를 추가 구입하기만 하면 된다. 공간의 낭비가 없게끔 육각형으로 겹쳐 놓을 수 있게 카드보드가 제작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적성을 시험하거나, 경험치를 쌓아 작물을 확대하고 싶은 초심자에게 적합한 제품이라 할 수 있겠다.

Plantui 6(https://plantui.com/products/plantui-6)

그런가하면 Plantui 6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혹은 게으른 초심자를 위해 처음부터 완벽한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구이다. “기술 없이도 싱싱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를 모토로 내새우는 이 화분은 전문적인 재배 기법을 하나의 화분에 담은 스마트 화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흙을 조달할 필요 없이 자체적인 영양 공급 배양물을 안에서 식물을 키울 수 있으며 날씨에 상관없이 내장된 빛을 통해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또한 자동으로 물을 공급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사용자가 원하는 식물 생장 속도에 맞춰 작동한다는 점이다. 집을 비우는 일이 생겨 싱싱한 작물이 당장 필요하지 않을 때, Holiday Pause 기능을 동작시키면 물과 빛을 평소보다 적게 주어 작물의 생장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찾아보는 한국형 도시 농업의 길

한국의 경우 태생적으로 도시 농업이 대중화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부족한 토지와 커뮤니티 결여형 구조는 도시 농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큰 걸림돌이다. 그러나 동일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스타트업들의 사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었다. 문제가 보완이 된다면 한국에서는 어떤 형태의 도시 농업 비즈니스가 탄생할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방향으로, 도시의 소외된 공간을 농업 복합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기업이나 지방 자치 단체 주도형 사업 모델로서, 버려진 공간을 개조하여 농업을 위한 시설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프랑스의 ‘LA CAVERNE’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장소와 재배 작물의 요건을 고려하여 조금만 시각을 달리하면, 의외의 장소를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다만 버려진 땅을 농업만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한다면 토지 가격대비 효율성과 생산성이 모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농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복합’ 공간이 되어야하는 이유가 바로 그 것에 있다. 재배 후 소비하고 남은 잉여 작물을 직접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 혹은 재배한 작물을 이용한 식당, 취미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시설과 같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과 함께 복합되어야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을 마련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 자주 찾는 효율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농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이며 강제성을 띄지않고 자연스럽게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갖춘 공간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방향으로 개개인의 도시 농업에 초점을 맞춰 도시형 소작 농업을 고려해볼 수 있다. 과거 농경 시대 때 이루어졌던 소작(小作) 이라는 행위는 땅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땅을 분배해주고 그 곳에서 나는 수익을 일정량 지급하여 이득을 얻는 구조였다. 도시형 소작 농업은 이와 반대의 개념으로 진행된다. 도시형 지주는 개인의 옥상, 테라스 텃밭과 노동력을 갖춘 사람에게 모종을 임대하거나 혹은 Micro Dendritic Pod와 같은 재배 화분을 개인에게 임대한다. 임대 받은 개인들은 소장농에게 일정량 이상의 수확물을 공급하고, 그 대가로 보상을 지급받는다. 소장농은 수확한 작물을 모아 이를 필요로 하는 음식점으로 배송하고 대금을 지급받는 이익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본업 외의 소일거리를 찾는 개인과 싱싱한 작물을 구하는 지역 식당 사이의 중계자 역할을 하는 비즈니스 모델인 것이다.

꿈은 꿈이라서 아름답게 남을 수 있다고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고민으로 도시 농업에 대한 꿈은 한 발짝씩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모른다. 야채를 장보러 가는 일이 어색해지는 날이 다가올지도. 대중화를 통해 한국만의 독특한 도시 농업 비즈니스 모델이 형성되기를 기대해본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