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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을 자극하라! 크라우드 소싱 2.0 시대를 그려보다

‘집단지성’ 이란 개념이 유행하던 2010년대 초, 집단지성의 긍정적인 사례로 함께 소개된 비즈니스 모델이 있었다. 제품, 서비스의 개발 및 생산 과정을 오픈하고 대중을 참여시킨다는 개념의 ‘크라우드 소싱’은 스타트업 열풍과 함께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아 헤매던 한국에서 인기 키워드로 등극하게 되었다. 곧이어 시장 선점을 노리며 한국의 ‘대표 크라우드 소싱 기업’을 표방하는 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한때 대학가와 스타트업가에서 핫했던 이 키워드는 현재 차취를 감추고 말았다. 상품 기획, 디자인, 생산 등의 제품 생산 체인 곳곳에서 대중들의 참여를 의미했던 크라우드 소싱은 한국에서 다른 의미로 변질되고 말았다. ‘크라우드 소싱’ 이라는 개념을 먼저 선점하기 위해 기업과 대중을 연결시켜주는 ‘크라우드 소싱 플랫폼’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거리에 목마른 학생과 프리랜서에게 시장에서 책정된 가격보다 더욱 싼 값에 아웃소싱을 주는 용도로 활용하거나, 별도의 보상 없이 아이디어만 갈취해가는 식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크라우드 소싱’은 한국으로 건너와 ‘헬조선화’ 되어버렸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사례와는 반대로 미국, 유럽 등에서는 여전히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기업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제품, 서비스 면에서 대중의 참여를 통해 신선한 가치를 제공하려는 브랜드를 소개하고 한국의 기업들이 어떻게 크라우드 소싱을 재해석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내가 꿈꾸던 화장품을 현실화시켜주는 브랜드, ‘Volition’

한국 화장품과 화장법으로 대변되는 ‘K-Beauty’가 주목받고 있다. 드라마, 아이돌로 인한 한류 열풍의 영향 외에도 높은 품질과 독특한 아이디어 제품들로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서구권에서도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신을 ‘코덕(코스메틱+덕후)’이라고 지칭하며 국내/해외 제품을 리뷰하고 제품 출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프로슈머들이 증가하여 소비자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한 몫을 한다. 이렇듯 시장에 출시된 제품들이 성에 차지 않는 코덕이라면 한번쯤 이런 상상을 해봤을 법하다. “왜 이런 제품은 나오지 않는 거지? 내가 화장품을 만든다면…”

미국 화장품 브랜드 ‘Volition(이하 볼리션)’은 코덕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을 자처한 브랜드다. 브랜드 이름인 ‘Volition (자유의지)’와 같이 이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의지’가 담긴 제품을 제작하고 출시하는 것을 모토로 한다. 볼리션이 대중의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구조는 기본적으로 투표, 그리고 투표를 통해 생겨나게 되는 가치를 아이디어 발안자, 기업 그리고 투표자가 나누어 갖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먼저 아이디어 발안자가 볼리션 홈페이지에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볼리션은 해당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을 별도의 연구원과 패키지 제조사, 제형 제조사 등과 함께 검토한다. 해당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 경우,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홈페이지에 해당 발안자의 신상, 아이디어를 제시하게 된 스토리, 프로토타입 이미지들을 게시한다. 게시글을 보고 해당 프로토타입의 제품화를 원하는 대중들은, 볼리션 홈페이지에 가입 후 투표를 할 수 있다. 이렇게 투표를 받는 과정을 볼리션 브랜드에서는 ‘시장성을 평가받는 과정’이라고 칭하고 있다.

한 제품이 일정 수준 이상의 투표를 받은 경우, 해당 제품은 실제로 제품화가 이뤄진다. 이때 아이디어 발안자는 출시되는 제품에 한해 일정량의 수입을 받을 수 있다. 해당 제품 아이디어에 투표권을 행사한 사람들은 첫 구매에 한정하여 할인된 가격에 해당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볼리션은 기업 (볼리션) – 아이디어 발안자 – 투표자 (아이디어 검토자) 3가지 구성원에게 모두 해택을 주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취향이 밥먹여주니? 네, 그렇습니다 힙합 취향 플랫폼 ‘heir’에서는요

예나 지금이나 예술인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 대중들에게 각인되면 한 번에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차가운 것이 예술의 세계다. 대중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예술인들은 각인되기 위한 그 한방의 기회를 노리고, 대중적이지 않은 노선을 추구하는 예술가에게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입은 중요하다. 승자독식의 룰을 완화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후원하려는 시도는 먼 옛날에서부터 계속되어왔으나,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유명 힙합 프로듀서 Pusha-T는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여러 기업인, 디자이너, A&R 팀과의 합작으로 대중들의 취향을 통해 아티스트와 대중 간의 상생을 추구하는 힙합 음악 플랫폼 ‘heir’를 출시한다고 2018년 8월 밝혔다. 현재 heir 는 앱 출시 전 팬과 아티스트 모두에게 얼리 억세스(early access)를 접수 받고 있는 중이다.

heir, https://betalist.com/startups/heir

일반적인 음악 청취자(Listener)와 장르의 팬 (Fan)을 구분하고 있는 heir의 목표는 아티스트와 팬의 공생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heir의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다. Heir에 가입된 아티스트는 자신의 데모곡 일부를 업로드 한다. Heir에 가입된 팬들은 업로드 된 분량을 듣고 좋음(불 모양 아이콘) / 싫음(해골 모양 아이콘) 취향 투표를 진행한다. 취향이 좋은 쪽의 득표수가 더 높은 경우 해당 아티스트와 좋음에 투표한 팬들은 보상으로 Heir 내의 가상 화폐인 ‘Crown’을 획득하게 된다.

heir 앱 내에서 팬은 Crown을 소비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발표하는 신곡이나 행사에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 권한을 신청할 수 있는 기회를 구매할 수 있다. 아티스트의 경우 Crown을 소비하여 자신의 작업물이 앱 내에서 주목받도록 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받는 피드백으로 곡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는 것이 heir 앱이 내세우는 특징이다. 특이한 점은 이 ‘Crown’이라는 가상 화폐를 실제 세계의 화폐로도 전환할 수 있게끔 설정했다는 점이다. 일정량의 Crown이 모이면 이것을 실제 화폐로 환전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heir에서는 취향이 돈이 되는 힙합 커뮤니티를 구축하고자 하며, 자금이 필요한 신진 아티스트들에게 힘들 실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을 바로 그 무기

거대 기업들이 시장성을 평가받고 브랜드의 팬을 만들어 내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는 것에 반해, 자본이 빈약한 스타트업은 그만큼의 규모로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자체 플랫폼을 활용한 크라우드 소싱은 투자 대비 보다 효율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중과 브랜드와의 밀접한 소통과 참여는 결국 ‘팬’을 만들어내고 하나의 일관된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내게 된다.

다만 어느 플랫폼이나 이용자들이 활동하지 않거나, 신규 유입이 없는 ‘고인 물’이 된다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플랫폼 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인원이 늘기 위해선 해당 플랫폼을 품고 있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뾰족하게 다듬어 드러낼 필요가 있다. Heir의 경우에는 모이는 팬 자체를 힙합 장르 팬에 한정시켜, 처음부터 장르에 대한 관심을 갖춘 팬들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볼리션의 경우 브랜드의 모토를 ‘기존 화장품 업계의 관행을 부순다’로 시작하여 개개인의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부각하고 있다. 아이디어를 제안받을 시, 발안자의 프로필과 해당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된 스토리 등을 함께 기재하게 하여 아이디어 게시 및 제품 판매 시 이를 공개한다. 해당 아이디어를 지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동의하는 의견이나 개인적인 경험을 함께 더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제품에 얽힌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지고, 볼리션이라는 브랜드가 기존 화장품 브랜드들과 다르게 소비자들과 소통한다는 이미지를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들 모두 플랫폼의 성격을 확고하게 가져감으로서 해당 플랫폼에 어울리는 사용자들을 모으려는 시도와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크라우드’ 소싱이라고 해서 반드시 ‘모두’를 품을 필요는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서의 크라우드 소싱은 단순하게 해당 개념을 이용한 플랫폼 출시가 유행하는데서 그치고 말았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크라우드 소싱 연관 기업들 역시 대부분이 노동력 제공자들과 노동력이 필요한 기업을 연결시켜주는 플랫폼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디어나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측과 기업에게만 이익이 돌아갈 뿐, 그 외의 참여자들-예를 들어 아이디어나 결과물의 지지자-에게는 별다른 보상이 돌아가지 않아 최종적으로는 ‘크라우드 소싱’이라는 단어가 유명무실해지는 결과로 남게 되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보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대중들을 한 곳에 모아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 위해선 참여자 모두에게 유의미한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문제를 앞선 사례의 브랜드들은 독자적인 플랫폼을 만드는 것으로 해결했다. 볼리션과 heir는 아이디어와 작업물을 업로드 하는 것에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으며, 투표권 역시 해당 플랫폼에 가입된 누구든지 행사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기존 한국에서 익히 진행된 크라우드 소싱 플랫폼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볼리션은 투표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제품 할인이라는 이익, 그리고 heir에서는 crown이라는 보상으로 현금 또는 아티스트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사용자들을 플랫폼으로 이끌었다.

크라우드 펀딩의 펀딩의 핵심 가치는 ‘가치의 공유’에 있었다. 대중의 참여를 통해 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발생한 새로운 가치를 서로 공유한다는 점에 있었다. 한국의 1세대 크라우드 펀딩은 발생한 가치를 서로 공유하기 보다 기업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중요시하면서 대중들에게서 점차 잊혀져가기 시작했다.  물질적인 보상이 되었든, 참여에 대한 성취감이 되었든 기업은 대중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답했다. 다시 일어날 크라우드 소싱 2세대가 과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만들어가려는 가치를 뚜렷하게 보여 대중을 ‘팬’으로 사로잡고, 밀접한 소통으로 팬심을 자극하여 참여를 독려하고 그렇게 하여 얻어진 가치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기업이 된다면, 거대한 골리앗 기업도 뛰어넘을 수 있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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