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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너도나도 큐레이션 ‘프리미엄’을 붙이는 세상에 고합니다

들어선 가게마다 주인들이 내게 상품들을 제안한다. 특히 요새 들어선 나를 아는 체 하며 부담스럽게 들이댄다. “그동안 고객님을 항상 지켜봤는데 이 시간이 되시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드시더군요. 쓴 아메리카노에 어울리는 케익류 어떠세요?”, “11월 가을이 다가와 이번 달엔 제가 전어를 준비해봤습니다. 한번 맛보시죠“, “고양이 좋아하세요? 고양이가 주인공인 소설들을 모아봤어요. 어때요?”

아니 그냥 좀 둘러보러 왔는데 말이죠… (;;;)

왠지 고급스러운 느낌을 줬던 ‘큐레이션’ 단어는 어느 순간 여기저기서 자주 얼굴을 비치더니 이젠 대형 마트, 대기업에서부터 소위 말해 힙하다는 공간과 온라인 서비스까지 모든 곳을 점령해버리고 말았다. 자꾸 날 위해서 뭔가를 준비해왔다고 하는데 말이지, 추천이랑 다를게 뭘까? ‘추천’ 이라고 쓰면 없어 보이니 ‘큐레이션’ 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게 아닌가?

우리가 아직 낯설었을 때,
큐레이션이 소개되던 초창기를 한번 생각해볼까.

처음 발을 들이는 곳에선 큐레이션은 일종의 가이드의 역할을 했다. 정확히 무엇을 제공하는지, 무엇을 먼저 찾아봐야할 지 모를 땐 누군가가 소개해주는걸 따라 가는게 편하니 말이다. 보편적인 분류 체계를 떠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OO과 관련된’, ‘에디터가 추천하는’, 주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소개 해주는 것이 신선한 느낌을 주기까지 했다.

어느 순간부턴가 큐레이션은 사용자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선택받으려면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적중률이 적용된 개념으로 말이다. 사용자의 방문 경로, 특징, 성향, 서비스 내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를 파악하고 분석해 정보를 제공하는 ‘맞춤형’ 추천의 개념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사용자를 잘 알고 있어야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보다는 온라인에서 ‘맞춤형 큐레이션’이 더욱 심화된 모습을 보이며, 현재까지도 심화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추천’과 ‘큐레이션’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개념이기도 하다. 단순히 공급자에 입장에서 제시하느냐, ‘가치’를 더해 제시하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존의 각기 다른 정보들을 새로운 기준으로 분류하여 제안한다는 행위 자체가 기존의 가치에 새로 해석된 가치를 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해석을 더하는, ‘큐레이션의 큐레이션

온라인에서는 이미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개인 맞춤형 큐레이션이 보편화 되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나의 과거 흔적들이 제안하는 정보들은 다른 어떤 방식보다도 적중률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인즉슨 사용자는 과거의 행적과 취향에 갖혀 정보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흐름에 반하는 탈 데이터 큐레이션 흐름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에 대한 적중률 측면에서 완전하게 데이터 분석을 벗어날 수는 없다. 대신 사람이 감성적으로 큐레이션한 정보를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재큐레이션 하거나,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큐레이션한 내용을 사람이 다시 큐레이션 하는 등의 흐름이 확산 될 것으로 예상한다.

1. 같은 유저들의 경험담을 공유합니다, HBO ‘Recommended by humans
HBO가 올해 7월 시작한 컨텐츠 큐레이션 서비스는 여타 다른 영상 컨텐츠 플랫폼큐레이션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이성적인 큐레이션보다는 같은 사용자가 추천하는 컨텐츠를 우연하게 마주치는 감성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HBO는 사용자가 같은 사용자에게 제안하는 컨텐츠 큐레이션을 구상해 세상에 내놓았다. 사이트에 접속하면 코멘트, 영상들이 담긴 수 많은 블럭들이 나타난다. 개별 블록들에는 HBO가 소유한 컨텐츠에 대한 트위터 추천 코멘트, 댓글, 실제 HBO 서비스 사용자들의 영상 추천 코멘트를 확인할 수 있다.
추천 코멘트를 보고 흥미를 느낀다면 해당 코멘트 블럭의 링크를 통해 추천 시리즈의 첫 에피소드 1편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해당 링크를 통해서 접속한다 해서 타 시리즈의 에피소드를 무료로 시청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내가 원하는 시리즈의 에피소드를 무료 시청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당 시리즈를 추천한 사용자 코멘트 블럭을 찾아 해당 링크에 접속해야한다. 이를 통해 HBO가 제공하는 모든 무료 에피소드를 열람하려는 얌체족들의 행동을 방어하는 효과를 갖게 되었다.

2. 알고리즘에서 벗어난 트래블코드, ‘유튜브 살롱

출처: 트래블코드 홈페이지 ( https://travelcode.co.kr/community )

퇴사준비생의 여행 시리즈로 유명한 ‘트래블코드’에서 선보인 커뮤니티 살롱 ‘유튜브코드‘는 유튜브 내 컨텐츠 시청을 기반으로 진행하는 커뮤니티 살롱이다. 다만 컨텐츠를 수동적으로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시청하는 방식을 지향한다.
유튜브는 시청 히스토리를 기반으로 사용자가 선호할만한 컨텐츠를 도출하여 추천한다. 이는 번거로움 없는 편안한 컨텐츠 시청 환경을 조성한다. 그러나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도 가끔은 다른 반찬을 먹어보고 싶은 법, 나의 선호와 유튜브의 선호에 갖혀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는 자세를 잊게 만든다.
유튜브코드는 이를 ‘다양성 속의 획일성’ 이라는 표현으로 경계하며, 새로운 스타일의 살롱을 제안한다. 동일한 관심사를 갖는 사람끼리 모여 관심사에 대한 유튜브 컨텐츠를 시청하고 의견을 나눈다. 다만, 나를 위해 유튜브가 큐레이션한 컨텐츠를 시청하는 것을 지양하고 사람이 큐레이션하는 컨텐츠를 중심으로 운영한다. 같은 관심사를 갖은 사람들이 모여 내가 아닌 타인이 추천하는 컨텐츠를 시청하고, 그에 대한 개인들의 견해와 경험을 교환한다. 데이터 기반 큐레이션에서 오는 익숙하지만 반복되는 경험 대신 비슷하지만 다른, 새로운 경험을 조성하는 살롱의 형태인 것이다.

큐레이션을 독특한 사용자 경험으로 승화시킨다면 어떨까?
지금까지의 큐레이션은 서비스 공급자에 의한 일방향성 성격이 강했다. 사용자는 정보를 제안 받고, 검토한 후 정보를 취할지 여부를 결정했다. 범람하는 큐레이션 서비스들 중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간다면 바로 이 일방향성 제안부터 개선되지 않을까?

3. 일본 Wired Hotel ‘1 Mile guide book

도쿄 Wired Hotel Asakusa 내 1 Mile Guide Book
(출처: https://www.roamwithr.com/wired-hotel/)

일본 아사쿠사에 위치한 와이어드 호텔 (Wired Hotel)은 서비스와 디자인 외 에도 독특한 컨텐츠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호텔이다. 로비를 지나 숙소로 들어가기 전 보이는 벽에는 그림이 그려진 카드들이 걸려 있다.
이 카드는 호텔에서 1 마일 거리 내 방문할 수 있는 인근 관광 명소들을 소개한 카드이다. 관광지까지 가는 방법과 간단한 안내가 소개된 가이드 카드는 디자인 그 자체로도 기념품이 되는 동시에 큐레이션의 기능을 한다.
투숙객은 관광지 카드를 둘러본 후 선택한 카드를 표지와 묶어 하나의 여행 책자를 만들 수 있다. 본인만의 여행 책자를 만들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호텔이 제안하는 관광지 큐레이션 다음 스텝으로 고객이 직접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단계를 넣어 독특한 경험으로 변화 시켰다.

누구나 제안은 할 수 있다, 무시당하기 전까지는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큐레이션을 제공한다”는 개념은 보편화 되어가고 있다. 큐레이션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하거나 차별성을 더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오로지 사용자 추천 기능만을 위해, 경쟁사가 제공하기 때문에 따라가야 한다는 이유로 무작정 공통점, 목적으로 묶는 행위는 ‘큐레이션’ 으로 인식되지 못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큐레이션을 염두에 둔다면, 컨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방향성도 달라질 것이다. 컨텐츠를 제작한 후 큐레이션 하기보다, 누구에게 큐레이션 할 것인가가 선행되고 컨텐츠가 기획, 제작되는 환경이 보편화될 수 있다. 컨텐츠 뿐일까?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서 소비재 PB을 기획하는 방식 역시 방대한 시장조사를 기반으로 하는 방식이 아닌, 큐레이션 고객 단위를 기반으로 변화해갈 가능성도 존재한다.

큐레이션의 영역을 영상, 음악 등의 문화 컨텐츠와 상품 외 정보 영역으로 확대해서 생각해보자. 금융을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실시간’에 집중하여 정보를 제공하려 한다. 그러나 큐레이션의 목적이 정보에 접근하는 사용자에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실시간’ 보다는 가이드가 필요한 상황을 감지하고,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적시성’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예상치 못하게 허를 찌르는 큐레이션은 그 컨텐츠와는 무관하게 높은 주목 받기도 한다 (…)
출처: MBC 예능 연구소 네이버 포스트 편집

더 이상 ‘분류’만 잘했다는 소리는 ‘큐레이션’을 했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 없다. 사용자를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만 생각되는, 메인 화면의 구색으로만 느껴지는 의미 없는 서비스로 남지 않기 위해선 다양한 고민과 시도가 필요하다. 누구나 쉽게 제안은 할 수 있다. 다만 선택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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