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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늘 과도기, 서울이라는 브랜드

우리는 브랜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거 무슨 브랜드야?’, ‘오, 이거 좋은 브랜드인가 보다!’ 

무언가를 나타내는 걸 브랜드라고 한다면, 도시도 일종의 브랜드입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깁니다, 브랜드가 뭔데? 저는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본인만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쌓여 그 분위기가 외부의 시선과 일치하는 것. 포틀랜드 도시를 떠올리면 커피와 자전거가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왜인지 짙은 갈색의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을 것 같고, 카페의 출입구에는 검정색 픽시 자전거가 놓여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포틀랜드는 미국에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제일 잘 발달된 도시 중 하나이고 스페셜티 커피의 성지이죠.

우리가 만들어 낸 브랜드인 서울은 어떨까요? 서울이라는 브랜드의 가장 근간을 이루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I SEOUL U 같이 만들어진 도시 브랜딩 말고 서울이 자연스럽게 형성한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어떤 요소들이 서울의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그 분위기가 어떻게 서울스러움을 나타내는지를 확인하며 브랜드로서의 서울을 살펴보겠습니다. 

서울을 대표하는 그 무엇

서울은 짧은 시간 내에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서울, 하면 혁신의 이미지가 떠오르죠. 그러나 서울이 발하는 변화는 개선이 아닙니다. 180도 다른 것들이 들어오는, 1에서 2가 아닌 10이 되는 변화입니다. 그렇기에 서울에는 현대적인 건물과 전통적인 건물이 공존합니다. 외국인들의 눈에도 이 광경이 가장 신기하다고 하네요. 과거 미술시간에 그렸던 미래도시 같은 곳에 한가운데 사찰이 위치하기도 하니까요.

심지어 해외 유명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는 몇 달 전 서울의 동묘를 방문했다 어마어마한 영감을 받고 가기도 했습니다. 동묘 아저씨들의 스트릿룩을 보고 스포티함과 캐주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한 믹스매치 정신이라고 극찬하며 큰 화제가 됐었죠.

서울의 모습 / 동묘 스트릿과 키코의 영감 받은 룩

이게 바로 서울입니다. 누군가는 정체성이 없다며 해외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짬뽕이 서울의 정체성입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어 보이는 것들이 같이 휘몰아치는 곳. 과감한 믹스매치. 서울은 모든 것이 ‘겹쳐’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겹쳐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문화가 겹쳐 흐르는 서울

서울이 빠르게 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이를 융합하여 내재화하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모여 새로움을 자아내는 서울의 공간들을 소개합니다.

[ 매일 다른, 성수동의 Project Rent ]

출처 : 공식 홈페이지 project-rent

성수동을 걷다 보면 빨간 벽돌의 건물에 R이라는 불빛이 반짝이는 공간이 있습니다. 어떤 공간일까 궁금해하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작은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한 달 뒤에 다시 방문하면, 다른 브랜드가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달에는 슈퍼마켓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건물 외부의 R 불빛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프로젝트 렌트는 소규모/신진 브랜드를 위한 오프라인 팝업 대여 공간입니다. 공간은 그 자리에 계속 있지만, 안의 브랜드와 콘텐츠는 매번 변합니다. 본인만의 무언가가 있는 브랜드가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다음에는 어떤 내용들로 채워질지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이렇게 프로젝트 렌트에는 수많은 브랜드와 이야기가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사실은 공간 안에 녹아든 브랜드가 조명을 받을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렌트 자체가 관심받는 것입니다. 그동안 공간 대여라고 하면 단순 임대에 치중했기 때문에 그 공간 자체는 스스로 브랜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 렌트는 스스로를 브랜딩 하기 위해 본인만의 스토리가 있는 전시들을 큐레이션 했고, 그것들이 쌓여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다른 문화가 콜라보레이션 형태로 win-win하는 것입니다. 건물 외벽의 R 글자 하나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궁금하게 만드는 곳, 프로젝트 렌트입니다. 

[ 크리에이터의 놀이터, 홍대 RYSE HOTEL ]

흔히 호텔이라 하면 A호텔 주방장이 조리한 조식을 먹고, A호텔 로고가 박힌 수영장에서 모히또를 한 잔 합니다. A호텔이 적힌 바닥을 따라 18층으로 올라가 객실에서 잠을 청하죠. 그러나 홍대 앞에 위치한 라이즈 호텔은 이 모든 과정을 거부합니다. 호텔을 이루고 있는 20층에는 모두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한남동의 핫한 카페, 타르틴 베이커리가 라이즈 호텔 1층에서 우리를 맞이합니다. 호텔 내에 위치한 카페는 쉽게 접근하기 어렵지만, 라이즈 호텔에서는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우리 라이즈 1층 타르틴에서 만나”가 성립됩니다. 또한 소격동에 있어야 할 아라리오 갤러리가 라이즈에 있습니다. 숙박을 하기 위해 호텔에 가는 게 아니라 전시를 보러 호텔에 가게 됩니다. 라이즈 호텔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쇼핑객마저 라이즈로 데리고 옵니다. 스트릿 패션 편집샵인 웍스아웃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죠. 

라이즈 호텔 1층의 타르틴 (출처 : rysehotel)
라이즈 호텔 내의 편집샵 (출처 : HYPEBEAST)

일반적으로 호텔은 진입장벽이 높은 공간들 중 하나입니다. 호텔 문이 다른 건물들에 비해 크고 무거운 것도 한몫합니다. 하지만 라이즈 호텔에서는 투숙객과 놀러 온 사람이 구분이 가질 않습니다. 사실 구분할 필요도 없고요. 라이즈는 호텔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라이즈로 들어오게 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놀다갈 수 있도록 설계해 놓았습니다. 라이즈 호텔은 묵기 좋은 곳보다 머물기 좋은 곳에 방점을 둡니다. 또한 라이즈는 커뮤니티입니다. 문화예술이 발달한 홍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 크리에이터, 음악가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작가 간 협업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워크숍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라이즈 호텔의 홈페이지를 보면 호텔 사이트라기보다 갤러리 사이트 같으니까요. 

라이즈 호텔 홈페이지 (https://rysehotel.com/)

호텔이 더 이상 여행자들만을 위한 곳이 아닌, 그 지역에 사는 ‘우리’가 놀러 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이번 주말은 다양한 브랜드와 스토리를 담아내어 서울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는 라이즈에 가볼까 합니다. 

시간이 겹쳐 흐르는 서울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져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하는 곳들을 소개합니다. 

[ 판자 건물이 문화공간으로. 중림창고 ]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에서 나와 서울역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한 거리가 나타납니다. 그 거리를 따라 언덕을 살짝 오르면 빌딩 속에 쌓여 보이지 않았던 오래된 동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복도식 주상복합 아파트인 성요셉 아파트가 있고 그 아래 있는 떡집과 가게들이 이곳의 세월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살짝 돌려 보면 새로운 건물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골목길을 따라 있던 아파트 앞 오래된 판자 건물과 창고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 앵커시설 8곳 중 첫 타자로 오픈한 중림창고입니다.

왼쪽에 중림창고, 우측엔 아파트

한 골목길을 기준으로 시간이 멈춘 곳과 시간을 계승한 곳이 마주 보고 있습니다. 한 발자국만 떼어도 손쉽게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 새롭게 개장한 중림창고는 여러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 협력하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특히 박지호 아레나 전 편집장이 새롭게 시작한 USO(어반스페이스오디세이)가 중림창고에 입주하여,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가 진행하는 커뮤니티인 심야살롱이 매달 이곳에서 열리고, 중림창고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책방, 전시 등 다양한 체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단순히 공간만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오기를 바라기보다, 이 곳에 콘텐츠를 집어넣어 더 오고 싶은 곳을 만들어나가는 곳입니다. 중림창고를 통해 충정로 일대가 부디 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봅니다.

instagram @uso_seoul

[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instagram @seoul.timesketch

요즘은 프랜차이즈 책방보다 동네 책방이 인기입니다. 대형 서점에 비해 동네책방은 주인의 취향과 정서를 그대로 녹여냈기 때문에 주인장이 제안하는 독서 스타일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동네책방으로 향하는 것이죠. 독립책방은 각각의 개성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고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동네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익숙하지만 낯선 도시, 서울을 스케치로 담아낸 작가와 아내가 꾸린 한옥 서점이 있습니다. 우선 책을 먼저 소개하자면 도시 공학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한 이장희 작가는 늘 우리의 곁에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경복궁, 광화문, 효자동 등을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책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에는 서울 스케치와 함께 지역에 얽힌 역사를 함께 곁들입니다. 600년 서울에 대한 내용이 이 책에 담겨있는 것이죠. 이러한 책을 출판한 작가 부부가 만든 책방이라니, 서울의 정취가 그대로 담겨있을 것 같습니다. 

책방,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에 가려면 서대문 영천시장을 지나야 합니다. 시장 골목을 지나 서점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책방은 오래된 한옥을 반년 가량 보수해 만들어졌습니다. 한옥 책방으로 꾸며져 깔끔하지만 옛 느낌이 물씬 나고, 주인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되어 서울의 시간을 그대로 담아낸 것만 같습니다. 허름한 골목이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덕분에 밝아진 것 같기도 하면서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느낄 수 있습니다. 서울의 시간이 쌓인 곳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도시의 본질은 지역을 이루고 있는 ‘우리’

서울은 계속 변하고 있기에 늘 과도기입니다. 변화하는 서울의 지점에서 낙후된 지역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여 살려내려고 하는 도시재생 사업이 최근 많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위의 중림창고 같은 공간이 바로 대표적 예시입니다. 그러나 최근 도시재생이 지속가능성보다는 일종의 트렌드로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혹은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디자인을 도시재생이라고 합쳐 부르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러한 도시재생이라는 단어의 무분별한 사용이 오히려 진짜 ‘재생’의 본질을 헤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외벽만 공사하고, 골격만 다시 세워서 도시재생이라고 갖다 붙이는 것처럼요. 도시재생과 재개발은 분명히 다릅니다..

도시재생이 지속 가능하려면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단순히 빨간 벽돌,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만든 공간 말고,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망’을 형성하여 이를 지속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중요합니다. 후암동의 공집합은 이러한 도시 재생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웃의 삶을 담는 공간으로,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잘 기록한 것이죠. 공집합은 bar입니다만, 더 정확히는 커뮤니티 바 입니다. 호스트나잇 등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많은 이웃이 참여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커뮤니티의 특성상, 저녁 참여만 많게 되면 낮의 비는 시간으로 수익률이 낮아집니다. 이는 결국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공집합 후암은 이를 탈피하기 위해 낮에는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점심, 저녁 메뉴를 강화했습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의 연결성 강화를 위해 이웃 주민이 돌아가며 바텐더를 자처하는 형태입니다. 공간 운영과 이에 대한 수익이 동네로 환원되는 구조입니다. 

이제까지 서울은 급격한 변화, 도시화를 통해 수많은 것들이 겹쳐져 성장해왔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시간이 쌓여 지금의 서울을 만들어냈고 그 중심에는 우리가 있습니다. 외적인 것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공동체의 의미와 속성을 이해하고 이 관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의 진짜 서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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