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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질병이 아니라 즐병입니다

질병코드 6C51

지난 5월 2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앞으로는 게임에 대한 통제 기능이 손상되어 직장이나 학업 등 삶의 다른 관심사 및 일상 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며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고, 또 이런 현상이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는 게임 장애 판정을 받게 됩니다.

인류가 발명한 모든 것이 그렇듯, 게임도 관점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 그 쓰임새를 정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게임 디자이너 제인 맥고니걸(Jane McGonigal)은 TED강연에서 게임을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 현실에서 채워주지 못한 본연의 욕구를 실현시켜주고 개인을 중요한 존재로 인정해주는 게임의 원리를 현실에도 구현할 수 있다면, 게임 속에서 악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게이머들이 현실에서도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게임으로 인해 야기되는 폭력성, 중독성 등 때문이지만, 게임 그 자체만으로는 활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쪽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우리의 인식 또한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WHO가 지적한 정신적인 것 보다 신체 건강과 관련된 것이 더 큽니다. 게임은 앉은 상태로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육체 활동이 많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자연스레 심폐지구력이나 건강 상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운동과 게임을 함께 할 수 있는 엑설게이밍(Excergaming)입니다.

Exergaming : 운동 게임 또는 게임 운동. 운동의 한 형태인 비디오 게임에 사용되는 용어

엑설게이밍은 운동의 지루함을 해결하고, 게임을 하면서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고안된 게임 장르입니다. 과거 오락실에서 즐기던 펌프(Pump)도 이 장르로 분류할 수 있고,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한 Nintendo Wii 같은 게임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현재 시점에서 엑설게이밍 사례를 통해 이 장르가 단순히 게임과 운동의 결합을 넘어, 기존의 게임들과 어떤 점에서 차별을 꾀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캐릭터의 레벨은 곧 나의 운동 능력, Nintendo Ringfit

지난 10월에 발매된 Nintendo Ringfit은 기존의 게임들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일단 실제로 엄청난 운동 효과를 보장합니다. 게임 유튜버는 물론 헬스 유튜버까지 해당 제품을 사용하고 후기를 콘텐츠로 올리고 있습니다. 게임 재미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지만, 운동 효과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즐기면서 운동 효과를 확실히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Ringfit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용자가 게임을 통해 운동 효과를 얻는 방식에 있습니다. 기존의 Nintendo Wii는 특정 스포츠를 게임으로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Ringfit은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데 운동으로 진행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게임 내 캐릭터가 간단한 이동을 하려고 해도 사용자는 제자리에서 걷거나 뛰어야 합니다. 롤플레잉 게임인 만큼 어떤 몬스터를 사냥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게임에서 요구하는 특정 운동 자세를 해야 합니다. 플랭크나 스쿼트 같이 사용자의 운동 자세와 지속시간에 따라 게임 속 캐릭터는 몬스터와 싸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게임과 마찬가지로 Ringfit도 오래할 수록 캐릭터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캐릭터 레벨 상승은 곧 사용자의 레벨 상승과 동일합니다. 높은 난이도를 수행한 사람은 운동에 익숙해지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이 게임 레벨 100을 달성한 사람에게는 어느덧 플랭크 1분은 가볍습니다. 즉, 캐릭터가 경험치를 통해 얻은 능력치가 실제 사용자의 몸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운동 목적에 따라 선택하는 게임, iWall

iWall은 게임보다는 운동에 더 가까운 엑설게이밍입니다.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특정 동작이나 움직임을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사용자는 화면을 보고 동작을 따라하면서 자연스럽게 운동효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 iWall은 기존의 엑설게이밍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스크린이 있고 운동에 가까운 게임들은 Nintendo Wii도 있었고, 일전에 트렌드 인사이트에 소개된 시각화를 이용한 운동(http://trendinsight.biz/archives/38117)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iWall이 다른 엑설게이밍과 가장 큰 차별을 두고 있는 것은 게임마다 운동목적과 효과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Parkour는 심폐지구력과 근육의 가동성 등의 효과를 목적으로 진행되고, Shadow Master는 몸의 균형과 아크로바틱한 몸의 움직임에 초점을 진행됩니다. 하나의 게임으로 막연히 운동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여타 게임과는 달리 진짜 운동을 하는 것처럼, 사용자에게 필요한 운동효과를 선택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다양한 게임과 운동효과를 줄 수 있다는 차별점 때문에 iWall은 활용도가 무궁무진 합니다. 피트니스센터 외에 소아비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에 설치할 수도 있고, 놀이공원, 재활훈련을 위한 병원이나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여행자를 위해 공항에 설치할 수도 있습니다. 운동과 게임이 필요한 곳에 스크린을 설치할 공간만 있다면 iWall에게는 충분합니다.

게임으로 즐겁게 병을 예방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면을 주로 언급했습니다만, 아직 갈 길이 먼 장르입니다. 이 장르의 효과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고, 이것을 즐기는 타겟 또한 제한적입니다. 특히, 게임과 운동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할지 타협점을 찾는 것은 이 장르의 가장 어려운 점입니다. 게임에 치중하면 운동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운동에 치우치면 게임성이 떨어져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이 운동 습관을 만들어 줄 수 있는지 또 그 효과는 얼만큼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을 주어야 합니다. 게임은 콘텐츠가 고갈되면, 재미와 몰입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합니다. 운동은 꾸준히 반복을 하면서 효과를 얻는 것이기 때문에 게임에서 이 부분을 얼마나 해결해줄 수 있는지에 따라 운동 습관을 만들어 주는데 도움이 될 수도, 일회성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Ringfit의 대부분의 리뷰는 ‘정말 운동 효과가 있다’ 였습니다. 그만큼 여전히 엑설게이밍에 대한 첫번째 의심은 효과입니다. 게임에서 지시한대로 자세를 취해도 운동 초보자와 숙련자가 해당 자세를 통해 얻는 효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추후에는 자세에 대한 정교한 피드백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코칭 시스템이 도입이 되는 등이 추가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엑설게이밍에 대해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 보다는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실 엑설게이밍이 모든 운동의 대체재가 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운동을 이제 시작하려는 초보자들, 집에서 간단하게 운동과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과 같이 운동에 재미를 붙이는 계기만 되어도 충분합니다. 운동을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근육을 키우고 모델처럼 군살을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몸을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드는 목적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운동을 건강이 악화되어 온갖 병이 걸리기 전에 예방차원으로 행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게 엑설게이밍은 좋은 운동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입니다.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게임은 질병이 아니라 질병을 즐겁게 예방하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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