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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롱테일의 선두에 ‘소비하는 덕후’가 있다

사는 재미가 없다면 사는 재미라도! 사게 함으로써 사는 재미를 주는 리뷰 전문 미디어 디에디트의 캐치프레이즈이다. 이들의 영상과 글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왜 이들처럼 잘 사지 못하나, 아니 왜 잘 살지 못하나를 자각하면서 그들이 소개하는 상품으로 대체될 내 물건들을 찾아보곤 한다. (혹시나 헷갈릴 독자들을 위해 사족을 붙이면 위 문장들에서 앞에 쓰인 ‘사는’은 buying을, 뒤에 쓰인 ‘사는’은 living을 의미한다.)

‘산다(buying)’는 것은 (아마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일이지만, 특히 덕후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들이 덕후로서의 정체성을 자발적으로 발현하는 첫 번째 행위가 바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들이 모여서 만들어 낸 소장품 리스트는 다른 이들로부터 덕후임을 인정받는 기본적인 조건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기본 단계에 들어서자마자 덕후로서 성장하기 위한 다음 미션들이 부여되고, 점차 다음 단계의 덕후 (소비자 (Consumer) – 생산하는 소비자 (Prosumer) – 덕후 소비자 (Tacusumer) ) 로 빠르게 진입하게 되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덕후라는 생명체에 대한 이해는 그 출발점인 소비 행위부터 출발해야 한다.

덕후의 소비에 대해 일반적으로 소장품 컬렉션이나 그를 좋아해온 시간으로 재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들의 소비는 이런 양적인 관점보다는 그 의미를 기반으로 이해돼야 한다. 과연 그들의 소비에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지 먼저 살펴보자.

그들의 소비가 지니는 세 가지 의미

덕후의 소비에 숨은 첫 번째 의미는 바로 ‘순간의 연장’이다. 일반적으로 상품이나 컨텐츠는 그를 향유하는 순간, 다시 말해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가장 선명한 감동을 선물한다. 그리고 감동을 잃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순간을 연장하고픈 충동을 느끼게 되고, 종종 이를 소비를 통해 감동의 원천을 소유함으로써 해결한다. 유사한 컨텐츠가 반복적으로 감동을 주고, 이로 인해 발생한 소유의 충동을 거부하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된다면, 그 순간 소비행위는 일반적인 영역에서 덕후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두 번째 의미는 바로 ‘영역의 확장’이다. 덕후들의 소비는 컨텐츠에 대한 1차 소비에서 그치지 않는다.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주지 않는 1차 산물로는 그들의 감동이 완전하게 만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금 더 선명하게 좋아해야 이해할 수 있는 2차 산물 (예를 들어 1차 산물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배경을 담은 원작 등) 이상으로 그들의 소비는 이어지곤 한다. 이렇게 2차 산물까지도 소비하고자 하는 덕후들의 니즈는 부족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2차 산물, 3차 산물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덕후들은 소비를 통해 ‘모두가 알고 있는 영역’을 넘어서 ‘나만 알고 있는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고, 소비를 통해 그 영역을 더욱 깊고 넓게 확장해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의미는 바로 덕후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소비행위를 통해 드러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문장 아닌가? 그렇다. 바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MZ세대 (밀레니얼 세대+Z세대) 의 특징에 대해 언급할 때 하는 말이다. MZ 세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덕후들, 그러나 소비행위에 대한 이들의 특징이 MZ세대의 그것과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덕후들이 빨리 등장한 MZ세대 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덕후들과 유사한 형태의 소비행위는 일반적인 영역에서 목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위에서 말한 덕후들과 유사한 MZ 세대가 경제활동을 하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소비를 가능케 하는 플랫폼들의 등장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작은 수요, 높은 다양성에 포커스를 두고 설계된 이 플랫폼들은 점점 더 빈번해지는 덕후적 소비행위를 타고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플레인아카이브, http://plainarchive.co.kr/

누구라도 덕후가 될 수 있다

프리미엄 블루레이 타이틀을 제작하는 플레인 아카이브 같은 사례가 바로 대표적으로 덕후적 소비로 인해 지탱되는 플랫폼이다. 예술영화, 제 3세계 영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등 보다 마이크로한 영화를 큐레이션하고,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만들어내는 곳. 일반적인 소비자의 눈높이보다는 훨씬 높고, 영화의 감동을 최대치로 소유하고자 하는 덕후적 소비에 걸맞는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스니커즈 거래 플랫폼 스톡엑스 또한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수 백만원을 호가하는 한정판 스니커즈들을 경매라는 방식으로 연결한 이 시도는 창업 3년만에 유니콘이 되는 것으로 그 시장성에 대한 의문을 한 번에 불식시켰다. 덕후가 되기 위해 한정판이나 2차 산물을 찾아다녔어야 했던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플랫폼들이 더 많은 덕후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스톡엑스, https://stockx.com/

돈보다는 관심을 보여주세요

텀블벅 등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소비하는 일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플랫폼에서의 소비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이 플랫폼에서만 얻을 수 있는 독점 굿즈. 한정판 굿즈가 만족시키는 소유에 대한 충동, 그리고 이 굿즈를 소유함으로써 컨텐츠의 시작을 함께 했다는 로열티는 사업자로 하여금 이 플랫폼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클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의 이러한 덕후적 소비가 가능성을 보이자, 다양한 영역들에서 유사한 시도가 목격되기도 한다. 보다 다양한 책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독립서점 (심지어 최근에는 이러한 독립서점이 장르별로 추가적인 분화를 이루기도 한다), 기존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않는 독립영화들만 상영하는 대기업 극장 레이블과 같은 사례말이다. 심지어 이제는 덕후들이 스스로의 컨텐츠를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그리고 나와 같은 덕후를 찾아 창조적인 시도를 기획할 수 있는 공간까지도 등장하고 있다. 취향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텀블벅, https://www.tumblbug.com/

중요하지 않다고?

위의 비즈니스들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덕후들의 소비를 두고 이상하다고 취급했던, 모두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으면 특이하다고 취급했던 과거에는 결코 영위될 수 없었던 비즈니스이다. 만약 위에서 제시한 플랫폼이 일반적이라고 느낀다면, 그는 이미 덕후적 소비가 우리의 일상으로 진입했다는 반증인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MZ 세대에서는 더 많은 덕후들이 양산될 것이다. 특히 소비의 관점에서 그들은 덕후가 갖는 다양한 특징을 원천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동안 덕후를 양산해 온 경험이 있는 브랜드들. 덕후들로 하여금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했던 경험이 있던 이들 브랜드들이다. 이들은 덕후의 충동을 자극했던 방식으로 MZ 세대의 소비에서도 우위를 점할 것이다.

롱테일 경제학이 출간된 이후로 14년. 우리는 이 꼬리가 얼마나 길고, 두꺼워지는지 목격해왔다. 그리고 그 꼬리의 선두에 바로 덕후들의 소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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