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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당신을 최고 덕후로 임명합니다” 품격을 논하는 덕후 승인 마케팅

한국에서 ‘덕후’는 간단하게 ‘행동하는 전문가’로 정의될 수 있다. 오타쿠가 철도, 애니메이션으로 대표되는 서브 컬처의 전문가를 의미했다면, 한국의 덕후는 대중적인 장르, 아니 온갖 영역을 포함한다. 다만 단순히 ‘좋아한다’는 개념에서 심화되어 적극적으로 정보를 얻고 공부하고 수집하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커피를 좋아하면 커피 덕후, 아이돌을 좋아하면 아이돌 덕후, 맥주를 좋아하면 맥주 덕후 등 온갖 장르를 막론하고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이 되었다. 유달리 ‘전문성’이 특징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덕후들은 ‘학위 없는 전문가’로 불리며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덕후 문화가 대중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커뮤니티 중심으로 폐쇄적인 활동을 전개했던 대한민국 덕후의 역사는 새로운 단계를 맞이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된 소셜 미디어 세계에서 자신의 덕후 활동을 전시하고 교류하는 일이 보편화 되었고, 소셜 미디어의 느슨한 연결을 통해 새로운 취향을 발견해 덕후가 되어가는 것 또한 흔한 일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질 없는게 ‘덕후 서열 매기기’라지만

덕후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부질없는 게 덕후들끼리 줄세우는 일이라구요”

소위 전문성과 활동 성과를 자랑하며 경쟁하는 덕후들끼리 스스로 ‘부질없다’며 하는 말이다. 좋아하는 일에 쏟아 부은 시간과 돈, 지식을 가지고 줄을 세우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말이다. 덕후들에게 자랑이란, 항상 하고 싶은 것 이자 덕(德)을 겸한 덕후가 되기 위해서 지양해야 할 바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가 대중화된 세상에서는 이러한 자부심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본인이 드러내고 싶다면, 사진과 영상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표현하는 일이 일상화된 것이다. 소셜 미디어 내에서 자랑하는 일과 멋있게 포장하는 일이 손가락질 받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있어빌리티’로 대변되는 밀레니얼 세대의 자랑과 인정 욕구는 덕후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당신을 덕후로 인정합니다 – 덕질에 품격을 부여하는 ‘덕후 승인 마케팅’

기업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이에 더 나아가 한국식 ‘덕후’의 정체성 정립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장된 인정 욕구, 그리고 재미를 좋아하는 밀레니얼의 특성이 맞물려 재미있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신의 덕력, 즉 전문성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여 이를 이용한 브랜드들의 마케팅 활동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덕후임을 인정하고 승인해주는 ‘덕후 승인 마케팅’이다. 이는 과거 커뮤니티 내에서 활동하여 덕후가 주최하여 진행하는 내부 이벤트의 개념이 아니다. 특정 분야의 기업이 참가자에 대해 덕후의 자격이 있는지를 평가하고 대리 승인하는 개념의 활동이다.

출처: 스타벅스 코리아 홈페이지

소셜 미디어의 확산화 함께 기업이 가장 처음 공략했던 덕후층은 바로 브랜드 덕후였다. 브랜드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미션을 희귀성 높은 브랜드 연관 상품을 걸고 공개한다. 이벤트의 달성 과정, 이벤트에 참여해 얻은 성과물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할 만한 것들로 제시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브랜드로부터 열렬한 덕후라는 암묵적인 인정을 받는다. 이제 소셜 미디어에 공유해, 본인의 획득물을 공유하고, 자랑하고, 덕후임을 (소셜 미디어 세계에서)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게 된다. 미션이 얼마나 까다롭고 어려운지, 상품이 얼마나 희귀성이 높은지에 따라 덕후 사이에서도 레벨이 나뉘게 된다.

덕후 승인 마케팅은 꼭 위에서 언급한 브랜드 팬덤 마케팅의 형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위의 브랜드 덕후를 승인하는 마케팅은 ‘당신은 얼마나 우리 브랜드에 대해 충성심이 높은가요?’를 측정하고 보상을 주는 측면이 강하다. 이에 반해 아래 소개할 승인 마케팅 사례들은 해당 분야에 대해 얼마나 관심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측정한다. 브랜드에 대한 지식과 관심은 부차적인 영역에 해당한다.

소수만이 갖고 있다는 환상의 자격증, 하이트진로 ‘소맥자격증’

출처: 하이트진로 블로그 Beer2DAY (https://www.beer2day.com/)

하이트진로에서는 전국의 주당들을 대상으로 독특한 이벤트를 개최한 적이 있다. ‘소맥 제조사를 찾아라’ 라는 부제가 달려있던 해당 이벤트는 자신만의 소맥 레시피를 응모한 사람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100명 한정 ‘소맥자격증’을 발급하였다.

자사 브랜드의 소주와 맥주를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을 위해 태어난 세상에 없는 자격증 ‘소맥자격증’. 주류 회사가 발급하는 자격증이기에 주당들에게는 몹시 탐나는 자격증이었음에는 틀림 없다. 이후 홍보용으로 주당으로 소문난 연예인에게 특별 발급되어 이색 자격증으로 암암리에 입소문을 타게 되었다.

2016년까지 추첨을 통해 매해 소량 발급되던 이 주류 자격증. 초기와 발급 방식이 바뀌어 발급받는 방식은 쉬워졌지만 수량은 매우 소량이었던 탓에 희귀한 자격증(?)으로 대우 받았다. 그 소량 마저도 발급이 중단되어 ‘환상의 자격증’으로 남게된 소맥자격증은 오히려 갖지 못해 소비자들이 역으로 발급을 문의하는 자격증이 되었다.

재치와 불지옥 난이도의 조합, 배달의 민족 ‘치믈리에 자격 시험’, ‘떡볶이 마스터즈’

출처: 배민 떡볶이 마스터즈 홈페이지 (https://topokkimasters.baemin.com/)

8. 다음 사진과 설명에 해당하는 치킨 소스를 고르시오.
뿌려 먹는 상큼한 드레싱 타입의 소스다. 치킨에 양파를 얹고 이 드레싱을 듬뿍 부리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39. [재료 맞히기 은 코리엔탈 깻잎두마리치킨의 핫!씨푸드 치킨입니다. 다음 보기 중 이 치킨에 들어가지 않은 재료를 고르시오.

보기만 해도 난감한 문항, 과연 풀 수 있었을까? 위의 두 문항은 2018년 배달의 민족 제2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에 실제로 출제되었던 문항들이다.

어쩌면 ‘그런 걸 왜 굳이 알아야해?’라며 비웃음을 받을 수 있는 영역에 대해 배달의 민족은 진지하게 접근했다. 정말 사소한 영역까지 알고 있는 덕후에게 ‘치믈리에’, ‘떡볶이 마스터’의 칭호를 부여하며 이들에게 품격을 부여하고자 했다.

장난스러워 보일 수 있는 이벤트를 서비스 이용자라면 누구라도 응모할 수 있게 허들을 낮춰 진행했다. 그러나 그 내용만은 쉽지는 않았고 그 어느 자격시험 못지 않게 진지하게 ‘격식을 갖춰’ 진행되었다. 가벼움과 진지함을 오가는, 전래 없는 이벤트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와 상반되게 자격 시험의 생각 외로 높은 난이도 탓에, 자연스럽게 이 자격을 받은 사람들은 정말 ‘덕후’ 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효과까지 얻게 되었다.

덕후에게 전문가라는 품격을 부여해주면서도, 참가자인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재미를 줌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갖게 해준, 덕후 승인 마케팅의 성공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덕후에게 즐거움을 주고 전문성을 인정받자

덕후들을 무시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오히려 이들의 충성심과 전문성을 알아보고 어떻게 이들을 키울 수 있을지, 어떻게 이들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기업의 일거리가 된 시대이다.

덕후들을 프로슈머의 한 축으로, 기업의 신제품 개발이나 평가에 이용하려는 시도는 많았다. 그들은 분명 그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아이디어도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디어성 상품들은 오히려 너무 니치한 나머지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대중에 박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도 존재했다.

출처: 여행에 미치다 인스타그램
여행의 미치다는 여행 그리고 여행을 기록하는 컨텐츠 제작에서 전문성을 지향하는 커뮤니티이다. 자체 제작한 컨텐츠들과 함께 제보 혹은 동의를 얻고 팔로워의 컨텐츠가 업로드 된다.
자신의 컨텐츠가 업로드 되었다는 것은 전문가 커뮤니티에 인정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여행에 미치다 커뮤니티에 팔로워들이 열광하게 하는 요소로서 작용한다.

덕후 승인 마케팅은 이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 덕후들의 인정 욕구를 충족함과 동시에 브랜드 역시 해당 분야의 전문성 높은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는 상부상조 마케팅 방식으로서 말이다. 덤으로 해당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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