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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반신(神) 아닌 반인반신(Machine)의 시대가 온다

동서양의 신화에는 항상 그들이 등장한다.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반씩 닮은 반인반신의 존재들은 때로는 친근한 존재로, 때로는 무서운 존재로서 신화 시대의 인간들과 함께 했다.

이들이 양면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되었던 이유는 인간 평균보다 뛰어난 능력치를 보이는 분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정 부분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동물의 외형과 능력으로 월등한 지각능력, 힘을 자랑했다.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반인반신’ 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에게 큰 권력을 행사했다.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서 지혜로써 이들을 물리친 이들은 신화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비과학적인 현상들에 철퇴를 내리는 시대에 고리타분한 신화 시대 이야기를 꺼내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21세기에 인간을 뛰어넘는 신화가 새로 쓰여 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대상은 동물이 아니다. 반인반’신’ 신이긴 하지만 여러분이 아는 신은 아닌, 머신(Machine)에 대한 이야기이다.

Facebook과 엘론 머스크의 새로운 사고 실험

2019년 7월,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페이스북에서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페이스북의 연구 부서 리얼리티 랩스(Reality Labs)는 미국 대학들 간의 합동 연구를 통해 두뇌 활동으로 컴퓨터에 글자를 입력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뇌의 활동 간질 환자들의 뇌에 전극을 꽃은 뒤 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환자들이 머리 속으로 떠올린 대답은 기기에서 뇌파의 해독을 통해 분석된다. 해독된 내용과 가장 유사한 답안이 화면 상의 글자로 출력되어 나타난다.

질문과 답안이 미리 제시되어 있었고 그와 유사한 답안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실제 생활에서의 뇌의 활동보다 훨씬 제한적인 범위로 실험이 진행되었다. 비록 제한된 범위에서 진행된 실험 결과였지만, 지난 2017년 개념적으로 소개했던 뇌와 기기간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한 단계 가까워질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페이스북이 웨어러블 디바이스 기기 개발을 통해 뇌와 기기의 상호작용을 시도했다면, 엘론 머스크는 직접적인 방법을 시도했다.

출처: dezeen, Elon Musk’s Neuralink implant will “merge” humans with AI

엘론 머스크가 2016년 설립한 뉴럴링크(Neuralink)는 AI와 인간의 결합을 목적으로 하는 스타트업이다. 그는 인간의 두뇌에 AI라는 자원을 결합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두뇌(superhuman intelligence)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 언급했다.

페이스북의 사례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뉴럴링크에서는 인간의 뇌에 기계를 결합한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고자 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뇌에 기계와 직접 연결되는 칩을 이식하여, 뇌신경과 기계 간의 직접 소통을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 뇌에 이식한 칩을 통해 사람의 생각을 컴퓨터와 다운로드 – 업로드하는 기술을 뉴럴 레이스(Neural Lace)라고 명명하였고, 뉴럴링크에서 이 기술을 현재 개발 진행 중에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계획은 뉴럴링크를 뇌로 이식 받은 후 생각만으로 아이폰이나 마우스, 키보드를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 그를 통해 뇌 손상으로 신체 활동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감각을 되살려주거나 의수, 의족을 달아 생각하는 대로 활동할 수 있게 돕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뇌에 대한 새로운 도전

과거 ‘뇌’에 대한 연구는 생체적인 부분에 집중되어 왔다. 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영역이 손상되었을 때 인체의 기능이 손실되는지, ‘천재’라고 불리는 우수한 두뇌와 범인들 간의 물리적인 차이는 무엇인지 등에 관한 연구 말이다. 과거의 연구에서 파악할 수 없었던 뇌의 작동 매커니즘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위해 90년대 ‘뇌과학’이라는 의학과 공학, 철학이 결합된 학문이 나타났다.

주로 생화학적인 시각에서 뇌와 신체와의 매커니즘을 연구하던 뇌과학 분야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생체학이나 의학적인 시각이 아닌 기기와의 ‘상호작용’ 범위에서 연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IT 분야에서 뇌 자체의 작용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기계가 이해하고 모방하여 동작하도록 연동하는 시각에서의 연구 결과가 속속들이 발표되고 있다.

뇌의 작동 매커니즘을 해독할 수 있고, 다른 감각 기관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곧 뇌 내 입력과 출력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앞서는 인간보다 우위에 섰던 신화시대의 반인반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월등한 능력으로 인간에게 권력을 행사했던 괴물들의 이야기 말이다. 현대 시대의 반인반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AI가 월등한 지능으로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으며, 수많은 SF 영화에서 인공지능과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꼭 절망적인 미래만 예측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정보가 입력되고 출력되는 관점에서 예상해보자면,

  1. 입력의 관점
    인간의 입장에서 입력이란, 감각기관을 통해 자극을 수용하는 일을 말한다. 눈을 통해 사물을 보는 일부터 혀를 통해 맛을 보는 일까지. 뇌가 어떤 전기적인 신호로 자극과 정보를 받아들이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면 가상의 자극으로도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꼭 유럽을 가지 않아도 동일한 패턴의 자극을 준다면 AR 기기로도 유럽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3년 간 수능 공부를 하지 않아도 일정한 양의 자극만으로도 수능 시험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2. 출력의 관점
    입력된 정보를 토대로 판단을 진행하고, 원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신체 기관을 통해 이뤄져 왔다. 간단하게는 대화를 통해 듣게 된 소리를 분석해 분위기에 어울리는 말을 발성 기관으로 출력하는 일부터, 삽을 바닥에 박아 넣고 흙을 퍼올 리는 과정을 배워 실제 손과 발로 실행에 옮기는 육체적인 일까지 포함한다.
    출력의 기본 전제는 ‘생각하고 있는 결과물을 실행할 수 있는 신체 기관을 가지고 있다’에서 출발한다. 신체 기관이 부족하거나,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세밀하지 못하다면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 만약 뇌의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기가 존재한다면, 신체의 장애, 반응의 둔감함과 민감함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기기를 통해 행동을 표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배워 뇌에 입력하고, 입력된 결과물을 복합해 신체 기관을 통해 출력하는 행동. 인간의 일생동안 무수히 반복되게 되는 행동들이다. 또한 현대 인간의 대부분이 젊었을 때 대부분을 ‘생산성’을 추구하는 행동, 노동 활동의 대부분에 뇌의 입력과 출력 기능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반인반신의 발전은 결국 직업과 노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지 않을까?

내 생각 그대로의 예술 작품을 만들다, ‘Mind Vases’

멕시코의 디자인 스튜디오 Studio Jose de la o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는 디자인 분야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갖는다.

해당 프로젝트는 예술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과연 디자인 툴을 다루는 기술이 없어도, 조형, 조예 능력이 없어도 예술을 할 수 없을까? 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인간의 ‘생각’을 디자인 결과물로 실체화 시킬 수 있다는 목표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인간의 추상적인 생각, 감각기관의 움직임과 뇌파를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착용하고 프로젝트는 진행된다. 생각을 진행할 수 있도록 둔탁한 모양의 꽃병이 눈 앞의 화면에 제시된다. 프로젝트 참가자는 해당 꽃병을 보고 자신이 생각하는 꽃병의 디자인을 머리 속으로 떠올린다. 해당 생각에 반응하여 화면의 둔탁한 꽃병은 형태를 변형해간다. 자신이 생각하는 꽃병의 형태를 떠올리고, 화면에서는 그에 맞춰 변형해가며 점차 참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태의 꽃병이 완성된다. 누군가의 추상적인 생각은 기존의 방식대로 사람이 손을 움직여가며 생산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생각 그대로 3D 프린터로 출력되어 세상에 결과물로 남게 된다.

출처: Studio de la O (http://delao.mx/index#/mindvases/)

지금까지는 인간의 뇌에서 떠올린 정보를 결과물로 남기기 위해선 장소와 신체 기관의 가동 능력이 중요했다. 운동선수와 일반인 간의 차이는 기본적인 신체 기관의 능력에서 판가름이 났다. 의사가 수술을 하기 위해선 수술 도구가 있는 병원의 수술실에 입장해야 했다.

반인반신이 대중화된 미래에는 장소도, 신체 기관의 가동 능력도 능력차의 주요한 요인이 되지 않는다. 뇌의 작용을 기기와 연결해 행동의 결과 수준을 표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Skill)보다 어떤 경험이나 지식을 습득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기기와의 대화에서 인간 사이의 대화 통로로 발전하길

현재는 뇌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으며, 상호작용하는 기기의 가동성과 안정성 문제로 반인반신에 대한 여러가지 가능성만이 존재하고 있는 상태이다. 주로 뇌의 반응 자체를 해독하는 분야와 기기의 인식률을 높이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도록 경량화 하는 방향에 집중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인간 개인과 기기와의 상호작용에 집중해 반인반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대화는 꼭 인간과 기계만이 하게 되리라는 법은 없다. 뇌에 담겨진 추상적인 생각들을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의 발전도 예측해볼 수 있겠다.

USB 포트가 상용화되던 2000년대 우스갯소리로 떠돌던 농담이 있다. 연애를 하는 남녀 사이 생기는 오해가 너무 많아 대화 없이 차라리 뇌에 USB 케이블을 꽂아서 소통하고 싶다는 류의 농담이었다. 어쩌면 농담이 진담이 될지 모르는 시대가 왔다. 20년 후에는 말로 하는 대화 대신 뇌파 신호를 통해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더 익숙한 사회가 올지 모르겠다. 어느 방향이든, 인간을 위한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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