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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인스턴트] 제 속도로의 회귀

시간에 쫓기듯 사는 일명, ‘현대인’인 우리는 어딘가에 깊게 집중할 시간이 없습니다. 책 한 권을 온전히 읽기도 어렵고,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어렵죠. 

디지털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해소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했습니다. 퇴근길에 장을 보고 오랜 시간 들여 정성스러운 요리를 해먹는 것보다 3분 요리를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게 익숙합니다. 종이책을 며칠 걸려 한 권을 다 읽지 않아도 됩니다. 책의 내용을 30분 분량으로 요약해 준 팟캐스트를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들으면 되니까요. 친구마저 쉽게 온라인에서 사귈 수 있습니다. DM 보내기 버튼 하나면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순식간에 랜선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세상. Real Time에 지배된 현상에 대해 지난번 큐레이션으로 다루었을 정도로 리얼 타임 비즈니스는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바꾸었습니다.   

너무 빨라진 우리, 다시 느리게

사람들이 늘 바쁘다 보니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비즈니스들이 나왔고, 그와 관련된 콘텐츠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방향 없이 앞만 보고 달린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지쳐버렸고, 다시 제 속도를 찾고 느린 길로 천천히 가보자는 라이프스타일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편안하고 아늑한 상태를 추구하는 휘게 라이프가 우리의 삶에 하나의 가치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다가 지나친 개발이 우리의 삶을 훼손하고 있기에 슬로라이프(Slow Life)가 제안되기도 했죠. 여기서 슬로라이프는 단순히 여유로움을 뜻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친환경적인, 지속가능한 생활을 모두 포함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기술을 통해 즉각적으로 나의 니즈를 충족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닌,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보자는 것이죠. 

바로바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에 NO를 외치다

출처 : 매일경제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모든 자원과 제품을 재활용 가능하도록 디자인하여 그 어떤 쓰레기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개념입니다. 베를린의 프레아(FREA)는 세계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식당입니다. 단 하나의 쓰레기도 만들지 않는 이 식당에는 말 그대로 쓰레기 제로를 위한 노력이 곳곳에 돋보입니다. 면을 직접 만드는 것은 기본, 테이크아웃 시 발생하는 포장지가 일절 없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휴지가 없고 면수건이 놓여 있습니다. 또한 남은 음식은 테이블 옆에 위치한 기계에 넣으면 24시간 내에 퇴비로 만들어진다고 할 정도로 음식물까지 나오지 않도록 설계를 해 놓았습니다.  

skyscanner

위와 같은 제로 웨이스트 운동뿐만 아니라 아무도 없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외부의 자극에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않고 일종의 은둔 여행을 떠나는 것이죠. 예전에 여행이라고 하면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일정을 소화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온전히 시간을 즐기는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스카이스캐너가 발표한 ‘2020 한국 여행 트렌드’에 따르면, 한국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행 키워드는 ‘느린 여행(Slow Travel)’이라고 합니다. 또한 환경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여행’도 11%를 차지하며 수많은 여행 키워드 중 인기 키워드로 분류되었습니다. 환경을 생각하여 탄소 배출이 적은 항공기를 타거나, 지역 사회에 관광수입이 선순환될 수 있도록 하는 ‘지속 가능한 여행’의 선호도 증가율이 96%에 육박할 정도로 여행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앞으로 NO를 외치는 일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의 발달로 우리가 만들어 낸 방대한 데이터가 스스로 학습하며 인간은 더욱 예측 가능해졌습니다. 그로 인해 실시간성 서비스들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은 오히려 NO를 외치는 사람들을 더욱 많아지게 할 것입니다. 

나를 파악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려주는 건 기계가 할 것입니다. 혹은 귀찮은 일을 대신해 줄 수도 있죠. 그렇다면 인간은 더욱 재밌는 일, 의미 있는 일을 찾을 것입니다. 기술이 발전되는 만큼 반대쪽에서는 인간이 누리고 싶은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대두될 것이고,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삶이 창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큐레이션에서는 인스턴트 세상에 “NO”를 외치는 현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제품과 더불어 기다림을 가치로 바꾸는, 오래가는 콘텐츠를 요구하고, 휘발되는 것에 질려 잡아두기 위한 시도들까지. ‘넓이’보다 ‘깊이’를 추구한 에디터들 각자의 시선을 즐겨보세요. 


제 속도로의 회귀 (현재글)

지속 가능한 물건

기다림의 미학

오래가는 콘텐츠

잡아두기 위한 시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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