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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세계] 장인의 미래, ‘유일’에서 ‘확장’으로

이번 [프로의세계] 큐레이션의 첫번째 글에서는 ‘장인’을 두고 아래와 같이 정의한 바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교육과 생활 필수품을 생산하는 사람 그리고 기술이나 기교가 있는 예술가라고 말이죠. 그러나 현대의 장인들은 이러한 사전적 정의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사실 ‘장인’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작은 방에서 수년 동안 한 가지의 물건을 꾸준히 만드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예술적인 역량과 비즈니스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을 후원하던 부호들, 그리고 뒤이어 에르메스를 위시하는 유럽의 명품 브랜드들이었죠. 자신의 노력을 확산시키는 것에는 다소 소홀했던 장인들의 결과물이었지만, 어느 새 멋진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커다란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들의 스토리가 하나의 컨텐츠가 돼 여러 플랫폼에서 소비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대체 왜 장인들을 찾는 것일까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골방 속 장인들의 어떠한 특징이 지금 이들을 컨텐츠로서 재탄생시키는 것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장인정신이 갖는 3가지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 가까운 미래를 예측해보고자 합니다.

#1. 나라의 이름
첫번째 이름은 바로 ‘나라의 이름’ 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별 장인, 혹은 장인 가문의 가업은 오랜 업력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그 사회에 필요한 상품이어야 했고, 국가 혹은 그와 동일시되는 왕권으로부터 선택받는다면 더욱 안정적으로 가업을 영위할 수가 있겠죠. 때문에 많은 장인들의 기술은 곧 전통적이고 국가적인 관점에서 보존돼 왔습니다.

일본의 항공사인 전일본공수 역시 장인정신의 이 부분에 주목했죠. 세계를 상대로 일본이라는 국가를 홍보하는 “IS JAPAN COOL?” 이라는 캠페인 시리즈에서 7명의 장인을 인터뷰했습니다.

#2. 예술의 이름
두번째 이름은 바로 ‘예술의 이름’ 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어려움에도 오랫동안 유지해온 시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다져지며 완성된 작품의 예술성에 대해서 우리는 탄복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성은 스스로 그 장인정신에서 출발한 브랜드들이라고 할지라도 계속 이 연결고리를 더 단단하게 하는 유인을 제공하곤 합니다. 일례로 루이비통은 지난 14년 한국에서 ‘ARTisans’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무형문화재 장인들과 현대미술가, 신진 작가를 연결하는 사회 공헌 활동을 했고, 세계적으로는 루이비통 재단을 통해 전 세계에서 예술가들을 오랫동안 후원해오기도 했습니다.

루이비통, ‘ARTisans’

장인정신이 내포한 예술성이라는 후광은 때로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들이 장인정신을 품고 있는 명품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그 후광을 덧입고자 하기도 하죠. 수많은 사례 중 하나를 꼽자면 현대자동차의 럭셔리 세단인 에쿠스가 에르메스의 장인들로부터 재탄생한 프로젝트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차에서는 당연히 에쿠스의 럭셔리 세단 세그먼트에서의 인지도 제고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에르메스라는 브랜드가 내부적으로 장인정신이라는 이슈를 얼마나 잘 견지해왔는가를 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EQUUS by HERMES

#3. 완벽의 이름
세번째 이름은 바로 ‘완벽의 이름’ 입니다. 이 모습은 세밀하고 정교한 작업이 요구되는 공산품 분야에서 특별히 잘 드러납니다. 렉서스는 ‘타쿠미’ 라고 불리우는 장인들을 제조 과정의 각 요점에 위치시키고, 이들의 기술적, 관념적 완벽성을 통해 ‘타쿠미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오랫동안 강조해왔습니다. 글로벌 카메라 브랜드인 캐논 역시 ‘수퍼 마이스터’ 라는 이름의 장인들을 생산공정의 전 과정에 깊게 관여시키고, 모든 공정에 ‘혼신의 힘을 다해 물건을 만든다’ 라는 모노즈쿠리 정신을 투영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들 장인들은 단순히 제조 공정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장인들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과 진행해도 참가합니다. 한편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들 또한 정교한 장인정신으로 유지되어온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죠.

미래에 장인정신의 이름은?
이번 글에서는 현대에 장인정신이 보여주는 3가지의 모습, 다시 말해 지금 이 시대에 장인정신이 컨텐츠로서 가지는 차별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3가지의 모습은 계속 유효할까요? 혹은 가까운 미래에 장인정신은 계속 컨텐츠로서 생존할 수 있을까요?이와 관련해 우리는 먼저 장인정신의 ‘확장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 큐레이션 기획에서 전문가를 다룬 <학위 없는 전문가, 정상과 이상 그 사이> 글에서는 전문가가 가져야 하는 필수 조건으로 ‘가이드’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이드는 난이도와 관계없이 다른 많은 이들을 능동적으로 동참시키곤 하죠. 곤도 마리에의 책과 영상을 보고 정리의 기술을 실천해본 당신처럼요.

그러나 장인정신은 가이드가 아니라 스토리를 통해 확산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연마된 장인의 기술은 가이드를 통해서 전파될만한 성격이 아닌 경우가 많죠. 그럼에도 장인이 꾸준히 유지해 온 가치관과 진정성 있는 스토리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곤 합니다. 비록 곤도 마리에나 데이비드 리스보다 그 범위는 좁을 수 있겠지만 말이죠. 실제로 장인정신에 대해서 주목하는 컨텐츠들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주목하곤 합니다. 2019년 LONDON CRAFT WEEK가 끝나고, 주최측이 오디오 제작사인 KEF 와 함께 발간한 팟캐스트 <Sound of Craftsmanship> 처럼요.

Sound of Craftmanship, https://audioboom.com/channels/4993452

또한 우리는 장인정신의 세 가지 이름 중 ‘완벽의 이름’을 다시 들춰볼 필요도 있습니다.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엎고 있는 3D 프린팅과 스스로 학습하고 개선하는 AI가 등장한 지금, 과연 장인들은 언제까지 ‘타쿠미’와 ‘수퍼 마이스터’를 자임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장인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완벽의 이름’을 내어주고, 대신 ‘원조의 이름(Origin)’을 가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제품을 얼마나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느냐가 종래의 장인정신을 판단하는 척도였다면, 앞으로는 얼마나 빠르게 복제되고, 쉽게 확산되느냐로 그 기준이 바뀔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더 많이 퍼지고, 더 많이 생산될수록 원작의 가치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죠.

이번 글에는 장인정신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까지 아우르는 긴 여정을 담았는데요. 과연 가까운 미래에도 장인들은 대중으로부터 추앙받아온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가진 3가지 이름 중 살아남을 이름은 무엇일지도 함께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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