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s-serif

Aa

Serif

Aa

Font size

+ -

Line height

+ -
Light
Dark
Sepia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패션을 큐레이션하다

미국 슈퍼마켓 체인 중에는 레일리즈(Raley’s)라는 업체가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북부와 네바다주를 중심으로 20년 기준 129개 매장을 갖고 있는 사업체로 작지는 않지만 월마트 같은 공룡 기업에 비해서는 크다고 볼 수는 없는 규모입니다. 그런데도 2019년 미국 언론에서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그 이유는 다름아닌 레일리즈의 독특한 컨셉 때문입니다. 레일리즈도 여느 마트와 마찬가지로 진열된 제품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데, 한가지 다른 점은 진열 방식에 있습니다. 바로 ‘건강’을 컨셉으로 진열하는 것이지요.

레일리즈는 제품 포장의 영양 성분을 분석해 해당 제품이 무설탕인지, 유기농인지, 필요로 하는 영양은 어느정도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스티커로 표기하고 진열했습니다. 물론 시대적 흐름도 놓치지 않습니다. 채식, 저탄수화물이 트렌드가 되자, 해당 성분이 특화된 제품을 진열하고 마찬가지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표기를 했습니다. 고객에게는 제품의 브랜드나 용도 외에 이 스티커가 또 다른 분류 기준이 됩니다. 분류 스티커에 따라 나누어진 표시만 봐도 자신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제품을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탐색 시간도 줄여줍니다. 유기농 우유를 찾기 위해 모든 우유 브랜드를 비교할 필요가 없고, 또 다른 유기농 치즈를 찾고자 다시 치즈 브랜드들의 성분을 찾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스티커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TOWARD, adweek.com

패션에서도 이런 독특한 큐레이션을 시도한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온라인 명품 소매업체 투어(TOWARD)입니다. 투어는 여느 명품 소매업체와 마찬가지로 옷에 대한 기본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합니다. 브랜드, 소재, 사이즈, 배송 기간 등 구매를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정보들 말입니다. 하지만 투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패션과 코스메틱 업계에도 요구되고 있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내용도 소비자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60도 제품 샷이나 사이즈 차트 등도 중요하지만, 브랜드가 얼마나 사회적 책임을 갖고 제품을 생산했는지에 대한 정보도 제품 분류와 구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TOWARD, towardstore.com

투어에 소개되려면 각 브랜드는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오가닉 여부를 묻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질문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 제조에 있어서 적당한 양의 물을 사용했는지, 의류 생산에서 폐기물이 적게 발생하는 생산법을 사용하는지 등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질문까지 답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는 100개 이상의 질문을 통과한 브랜드만 투어에 소개가 됩니다. 이런 분류를 통해 소비자는 투어에서 티셔츠, 아우터와 같은 분류 외에도 ‘비건 소재’를 사용하는 제품이나, 사회적 소수집단이 제품 제작에 관여한 브랜드를 필터를 통해 찾을 수 있게 됩니다.

TOWARD, towardstore.com

투어의 CEO Ana Kannan는 이러한 브랜드의 투명성이 계속해서 강조되는 책임 있는 소비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 MZ세대 여성 1000명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74%는 책임 있는 구매를 위해 필요한 검색 노동에 지친다고도 했습니다. 투어는 브랜드에 대한 의심과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검색 활동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브랜드는 자신들의 진정성을 알리고 인정받을 수 있고, 소비자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함께 불필요한 노동을 줄 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투어의 질문이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브랜드 입장에서 진정으로 사회적 책임을 하고 있다면, 이 같은 방식이 오히려 투명성과 신뢰를 얻기 좋을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화장품 App 화해가 있습니다. 이 서비스 초기에 제품에 대한 성분과 적나라한 리뷰로 싫어하는 브랜드가 많았습니다.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타인에게 낱낱이 분석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현재 화해는 적나라한 리뷰와 데이터로 인해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화해에서 소비자들에게 소개되고 입소문을 탄 브랜드는 믿을 만한 제품이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화해 App, asharogue2017.tistory.com

투어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는 화해와 같은 플랫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보편화 되지 않은 방식이지만, 이 작은 변화에 동조하는 브랜드와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투어는 패션업계에서 책임 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1순위로 선택하는 플랫폼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투어는 방대한 데이터를 축척할 것이고, 이를 토대로 더 정교하고 세세한 분류를 하거나, 반대로 브랜드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컨설팅을 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로 확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모든 것들의 기초에는 투어가 생각하는 큐레이션 컨셉이 있겠지요.

소비자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상품은 이미 세상에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구매에 있어서 늘 불안해합니다. 어떤 상품이 적합한지 너무 많은 정보가 혼란을 야기하고, 올바른 정보를 찾고자 시간을 소비해야 하며, 합리적 소비를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같은 제품을 구매한 리뷰를 읽고 위안을 삼으려고 합니다. 개인화 필터가 적용된 쇼핑의 첫 페이지, 추천 콘텐츠 앞에서도 우리는 또 다시 검색 창을 열곤 합니다. 관심있는 것과 사고 싶고 필요한 것이 늘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개인화라고 해도 여전히 너무 많은 선택지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하죠.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사를 쭉 나열해서 무한정의 선택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컨셉과 그것의 올바른 정보를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브랜드에서 소비자 조사를 통해 그들이 알고 싶은 것,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시각화하고 큐레이션을 할지 고민을 해보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여줄 수 있는 비즈니스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답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